연극 ‘은밀한 기쁨’ 극단 대표 우현주·연출가 김광보 인터뷰

입력 2014-02-04 03:31 수정 2014-02-04 07:19


우현주 “10년 전 대본 처음 봐… 최근 한국과 비슷”

김광보 “가족 이야기 통해 정치적 주제 풀어갈 것”


오는 7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연극 ‘은밀한 기쁨’은 상반기 기대작으로 꼽힌다. 영국에서 인정받은 최고의 극작가 데이빗 해어의 대본에, 요새 ‘쉴 틈 없을 정도로’ 잘 나가는 연출가 김광보(50·오른쪽), 5년 만에 무대에 서는 추상미와 더불어 이명행 등 극단 ‘맨시어터’의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합류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본을 고르고, 번역하고, 직접 ‘첫째 딸’ 역할을 맡아 무대에 오르는 우현주(44·왼쪽) 맨시어터 대표와 연출자 김광보를 최근 대학로 연습실 인근에서 만났다.

작품은 애인 어윈과 같이 작은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며 살아가던 이사벨의 아버지가 죽으면서 시작된다. 이사벨은 아버지가 남긴 후처 캐서린을 떠안고 묵묵히 삶을 견뎌나가려 하지만 정치적인 야심과 경제 논리로 똘똘 뭉친 언니 마리온과 형부 톰의 생각은 다르다. 작품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남겨진 다섯 사람이 펼치는 갈등과 파국을 통해 부의 축적과 사회적 성공 등이 과연 아무런 의심 없이 추구될 가치인지 예리하게 묻는다.

우 대표는 10년 전 처음 대본을 읽었다고 한다. 캐릭터가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동안 잊고 있다 최근 세대 간의 갈등과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 현실을 보면서 다시 찾게 됐다고.

“저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대학 다닐 때 학생 운동도 안 해본, 1세대 X세대에요. 20대에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것을 봤고, 이제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무엇을 가치관으로 삼아야 할지 모르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민영화가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현 정부의 모습이 1980년대 영국 마거릿 대처 수상 시절과 겹쳐 보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지금 연극을 올리는 게 의미가 있겠다 생각했죠.”

김 연출이 “그렇게 정치적인 거야? 난 가족 이야기로 풀어나갈 건데”라고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그는 “이 작품처럼 카오스가 온 적이 없어요. 작품이 어렵고, 전제(筌蹄)가 잡혀야 하는데 아직까지 못 잡겠어요. 가족 중심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 ‘체호프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은 ‘입센적’이에요. 두 개를 조화시켜 무대에 올려야겠죠.” 2012년 연극 ‘그게 아닌데’로 연극계 각종 상을 휩쓸고 지난해에도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스테디 레인’ 등 쉴 새 없이 작품을 해온 그가 간만에 적수를 만난 듯했다.

두 사람은 무대 위에서는 여배우와 연출가로 만나지만 무대 밖에서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꿋꿋하게 극단을 꾸리고 있는 ‘극단 대표’들이다. 김 연출은 올해 20년을 맞은 극단 ‘청우’의 대표이기도 하다.

우 대표는 “아우∼! 감독님 옆에 서 있기도 무섭죠”라며 어려워했다. “지금 우리 배우들이 최고 수준급 배우들인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딱 잡아내셔서는 마치 선문답 하듯 이야기를 던지시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정말 마술같이 극이 확 달라지더라고요(웃음).”

김 연출은 “우 대표를 볼 때마다 참 고맙다”고 운을 뗐다. “지금 극단을 운영한다는 게 참 쉽지 않아요. 그런데도 꾸준히 작업해서 주목할만한 걸 보여줘요. 이번에 처음으로 같이 작업했는데 앞으로 맨시어터에서 불러주면 일 년에 한 편은 언제든지 하겠다고 했어요. 이건 일종의 파트너십 같은 거죠.” 2007년 창단 이후 맨시어터는 ‘썸걸즈’ ‘울다가 웃으면’ 등의 작품으로 일상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그들만의 색깔을 보여 왔고 특히 지난해에는 ‘14人(in) 체홉’ ‘왕은 죽어가다’ ‘터미널’ 등 의미 있는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은밀한 기쁨’, 과연 무얼까. 우 대표는 “극 중 인물들이 저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새롭게 깨달음을 얻는데, 그게 은밀한 기쁨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무엇을 얻길 바라는지 물었다. 김 연출은 “내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게 타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음을 얻는 것이 바로 은밀한 기쁨이에요. 사람들은 연극이 어렵다고 말하는데 그건 소통할 줄 모르기 때문이지요. 소통하지 않으면 관계가 이뤄지지 않아요. 마음을 닫고 온 사람들은 극장에 온 순간 더 갇히지요. 마음 편하게 와서 소통해주면 좋겠어요.”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