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료 영리화’ 추진 문제점… 병원 자회사 설립 허용하면 결국 환자 대상 돈벌이
입력 2014-02-04 01:32
40대 직장인 유재석(가명)씨는 척추골절로 한 대학병원의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의사는 유씨에게 재활 치료를 위해 의료기기를 구매할 것을 권유했다. 강매는 아니지었만 유씨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의료기기를 구매하기로 했다. 이 척추 의료기기는 이 대학병원의 의료법인 자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다. 병원에서는 또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온천시설, 체육시설을 통해 건강관리를 할 것도 권유했다. 유씨는 이 대학병원에서 치료비 외에 의료기기 장비 구입 등에 약 300여만 원을 지출했다.
유씨의 상황은 대형병원이 영리 자회사를 설립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한 한 시민단체의 예시다.
최근 ‘의료 영리화’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다. 의료 영리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네이버와 다음 등 각 포털사이트에서는 의료비 폭등을 우려하는 각종 괴담들도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및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에 반발해 대한의사협회는 3월 총파업을 예고했으며 야당과 치과단체, 약사단체, 시민단체는 의료가 영리화 되면 국민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신(新)의료시장 창출, 병원 경영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이를 반박한다. 이러한 상반된 주장을 두고 국민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정말 의료영리화가 진행되면 의료비가 폭등할까.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크게 영리 자회사 설립과 원격의료 도입의 두 가지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 입법 추진이 ‘의료 민영화의 전 단계’ 수순이라고 우려한다. 또 영리 자회사를 허용할 경우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논란은 지난 12월 박근혜 정부가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을 골자로 하는 ‘보건의료분야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정부는 현행 보건의료 제도가 부대사업을 과도하게 제한함에 따라 병원의 경영 효율성과 수익성을 약화시키고 의료 연관 산업의 부진을 초래했다고 평가하면서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기존에 병원 운영에 필요한 장례식장, 산후조리 등 비영리 목적에만 허용했던 부대사업을 의료관광을 위한 여행업, 숙박업, 외국인환자유치업을 비롯해 의약품 개발, 화장품·건강보조식품·의료기기 개발 등의 의료 연관분야까지 대폭 확대한다. 온천과 체육시설 등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후 복지부는 말을 바꿔 기존 발표의 예시가 잘못됐다며 의약품과 의료기기 제조품의 모병원 판매는 금지할 것이라고 했다. 곽순헌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당초 발표한 부대사업 확대 예시 중 일부 사업은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과오를 인정했다.
문제는 이 수익 사업이 환자들을 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자회사가 기본적으로 병원 부대사업을 영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 추구 대상이 환자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부대사업 수익은 결국 환자들을 대상으로 버는 돈”이라며 “이는 곧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익 민주당 의원은 “부대사업의 범위가 의료기기, 화장품, 호텔업 등 환자들을 대상으로 돈벌이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포함됐다”며 “의료기관이 환자들 주머니를 노린 장사나 하게 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실례로 의료 영리화와 관련해 세브란스병원의 안연케어가 감사원으로부터 불공정 사례로 지적된 바 있다. 안연케어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처방되는 원내의약품을 독점 공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이 재벌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터져 나오고 있다. 사회진보연대(이하 사진연) 보건의료팀 김태훈 정책위원은 “투자활성화 대책은 박 대통령이 임기 1주년 기념으로 재벌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병원에 약과 의료기기, 화장품 사업 등의 자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면 재벌들이 병원에 우회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에 따르면 실제 지난해 송도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 설립이 추진됐는데 그 주요 투자자는 다이와 증권이라는 초국적 금융자본과 삼성이었다. 이와 관련해 삼성은 제약, 의료기기를 미래 신산업으로 선정하고 국내 1위 의료기기 업체 메디슨을 인수하는 한편, 삼성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약 3000억원을 출자했다. 더불어 서울대병원과 합작회사를 만든 SK는 병원의 전산시스템(EMR), 약국관리프로그램을 파는 유비케어, SK제약을 계열사로 보유하고 있다. 김 정책위원은 “재벌들이 병원과 공동 출자하는 형태로 자회사를 만들면 실질적으로 병원에 투자할 수 있게 되고 병원이 더욱 영리적 목적으로 운영되도록 압박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도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강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동네병원에 도입하겠다는 원격의료는 사실 ‘빅5’ 병원이 앞서 준비해 왔다. 대형병원은 IT 관련 대기업과 힘을 합쳐 유헬스 도입에 전격 대비해 왔다. 지식경제부 주도로 2010년부터 진행해온 ‘스마트케어서비스(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최근 종료된 가운데 이 사업에 SK텔레콤, 삼성전자 등이 참여했다. SK텔레콤은 서울대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인성정보와,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전자, 삼성메디슨과 유헬스 모델을 구축해 왔다.
무엇보다 원격의료는 ‘안전성 논란’,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과도 관련이 깊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원격의료라는 이름의 핸드폰 진료는 오진 가능성을 높여 국민의 건강권을 크게 해칠 수 있다”면서 “정부가 단 한 번의 시범사업도 하지 않은 위험한 정책을 굳이 강행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환자 진료정보 기록 등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정부는 이번 투자활성화 대책이 영리병원의 허용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복지부는 의료법인이 자회사에 투자해 발생한 수익을 의료법인 구성원에 배분하지 않고 고유 목적에 사용한다면 영리추구 금지 목적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영찬 복지부 차관은 “투자활성화대책은 보건의료의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목표가 있다. 자회사 수익으로 병원이 정상화될 뿐 의료비는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석균 정책실장은 “비영리병원과 영리병원의 차이는 투자자의 투자와 이윤배당이 허용되는지 여부에 있다”며 “자회사가 모병원의 자금 조달과 이익배당 통로로 활용되면 결국 병원 자체가 영리화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정교한 대책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윤 서울대 의과대 교수는 “의료계와 시민단체를 포함한 각계 이해 당사자들과 합의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병원 본연의 임무는 환자를 잘 진료하는 것”이라며 “병원이 환자 진료에 소홀해지거나 자회사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지나치게 상업화되면 그로 인한 피해는 환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기보다는 건보수가를 조정해 병원이 환자 진료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윤형 쿠키뉴스 기자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