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안팎 우환] 美 양적완화 추가 축소 금융시장 위기감 확산

입력 2014-02-03 01:33


신흥국발 금융 불안이 국제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지난달 말 양적완화 규모를 100억 달러 추가로 줄이면서 신흥국에서는 자금유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회복 기미를 보이던 세계경제 전체가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정부는 상황별 대응계획(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시장 불안이 단기간에 진정되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금융위기 불안감에 신흥국 자금 ‘썰물’=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 분석기관인 이머징 포트폴리오 펀드 리서치(EPFR)를 인용해 지난달 신흥국 주식시장에서 총 122억 달러(13조784억원)가 빠져나갔다고 2일 보도했다. 유출 규모도 급증했다. 지난달 첫째 주에는 13억1800만 달러가 유출됐지만 셋째 주에는 24억2900만 달러, 마지막 주에는 63억 달러가 신흥국 시장에서 이탈했다.

선진국 시장으로 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신흥국 시장에서는 돈이 빠지는 양극화 현상은 올해 주식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 돼 버렸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16∼22일 미국과 서유럽 주식시장으로 각각 24억 달러(2조5872억원), 42억 달러(4조5276억원)가 순유입했다. 미국 시장으로는 2주 연속, 서유럽으로는 30주 연속 순유입 상태가 이어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아시아와 동유럽·중동·아프리카(EMEA)에서는 각각 2억9000만 달러(3126억원), 7000만 달러(754억원)가 순유출했다. 남미 주식시장에서도 3억9000만 달러(4204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문제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결정 이후 ‘자금의 신흥국 이탈, 선진국 유입’이라는 방향성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신흥국으로 금융위기 불안감이 번지는 상황에서 신흥국 자산 보유를 줄이라는 권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신흥국 시장에서의 자금 이탈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시장 심리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라며 “취약국으로 거론되는 나라들이 새로운 자본통제를 도입하는 등의 돌발적 변수가 생기면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흥국 시장 이탈은 국내 펀드 실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글로벌 이머징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3.44%였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이 속한 브릭스 펀드와 EMEA 펀드의 수익률도 각각 -3.92%, -1.20%로 마이너스였다. 중남미 펀드는 -5.98%로 가장 저조한 수익률을 나타냈다. 최근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가치 급락에 따라 금융위기 우려가 커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브라질(-5.90%) 중국(-4.19%) 러시아(-4.12%) 등 신흥국들의 선두주자도 저조했다.

◇신흥국 수출 비중 높은 한국, 안심하긴 일러=막대한 외환보유액 등 여타 신흥국과 차별화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지만 실물경기에 대한 우려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특히 수출액의 상당 부분이 신흥국에 쏠려 있다는 점은 부담스럽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지난해 수출액에서 중국·러시아·베트남·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이집트·터키·우즈베키스탄·브라질 등 10개 신흥국 비중이 41%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10개국 중 유동성 위기 대응 능력이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은 나라는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두 곳에 그쳤다. 이집트와 터키는 유동성 위기 발생 위험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위기에 취약한 신흥국들이 쓰러지면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응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합동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미국 양적완화 추가 축소 조치에 대해 “어느 정도 예견됐지만 파장이 예상보다 크게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양호한 외화 건전성 기조 유지, 일부 기업의 부실 확산 차단 등 금융 당국은 우리 경제의 취약 부문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30일 FOMC의 양적완화 축소 직후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시장 불안 조짐이 발생할 경우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선제적으로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정수 기자, 세종=백상진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