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라운지-정원교] 중국판 ‘임을 위한 행진곡’

입력 2014-02-03 02:58 수정 2014-02-03 14:40

중국의 설 춘제(春節)를 얘기할 때 ‘춘완(春晩)’을 빼놓을 수는 없다. 국영 CCTV가 섣달 그믐날 밤 생방송하는 특집 ‘버라이어티 쇼’로 춘제롄환완후이(春節聯歡晩會)를 줄여 이렇게 부른다. 노래와 춤, 마술에다 소품이라고 부르는 코미디 등이 장장 4시간 동안 계속된다.

올해는 전국 202개 TV 방송이 동시에 ‘CCTV 춘완’을 내보냈다. CCTV 측은 13억5000만 인구 가운데 7억명 이상이 춘완을 시청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상속자들’로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민호 ‘어우바(歐巴·오빠)’의 춘완 출연은 중국 소녀 팬들에게 단연 관심거리였다. 그는 대만판 ‘꽃보다 남자’의 주제곡 ‘칭페이더이(情非得已)’를 불렀다.

춘완은 이제 CCTV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자체 제작한 춘완을 방영하는 TV가 있을 뿐 아니라 각 마을이나 직장에서도 자기들만의 특성을 살린 춘완 무대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게 ‘노동자 춘완’이다. 네이멍구(內蒙古) 출신 30대 농민공(農民工·도시에서 일하는 빈곤층 노동자)의 주도로 2012년 춘제 때 베이징 변두리 조그만 극장에서 시작됐다. 세 번째를 맞은 올해는 훨씬 충실해졌다. 규모는 ‘CCTV 춘완’에 훨씬 못 미치지만 구성 프로그램은 다양했다. 이 동영상은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노동자 춘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는 점이다. 다만 ‘노동자 찬가’라는 제목 아래 가사도 바뀌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야. 우리에겐 지혜와 두 손이 있어. (중략) 우리의 행복과 권리는 우리들 자신이 쟁취해야 하는 것.”

중국 노동자들의 율동은 우리나라에서 하던 그대로다. 무릎을 치고 주먹을 허공으로 내지르고…. 중국 당국은 2020년까지 전국 각 도시의 농민공 수가 1억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호적제도 개선 등 대책도 마련 중이다.

그러나 노동자·농민이 주인인 사회의 수도 외곽 후미진 무대에서 노동자들이 권리 쟁취를 외치는 현실은 분명 역설이다. 빈부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 앞에서 이들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