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기획]빌린 기록 지워주는 숍까지… 명품 의류 집착이 낳은 세태

입력 2014-02-03 01:33 수정 2014-02-03 07:12

일정 시간이 지나면 빌렸다는 사실 자체를 삭제해주는 명품 ‘렌털 숍’이 등장했다. 명품을 대여했던 이들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빌린 지 6개월이 지나면 관련 기록을 지워주는 것이다. 지독한 ‘명품 사랑’이 빚어낸 풍경이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황모(27·여)씨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명품 옷을 입고 출근한다. 한 달 수입이 250만원 수준으로 명품 외투 한 벌 마련하기도 빠듯한 그가 명품 옷을 자주 입는 비결은 대여업체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을 제외하고 20일 동안 매일 명품 옷을 빌려 입어도 월급의 5분의 1이면 충분하다.

한 대여 업체는 손님이 50만원을 내면 명품 옷을 20회 빌려준다. 1박2일이 기한으로 옷의 종류는 매번 바꿔 입어도 상관없다. 다만 대여용 명품에도 ‘급’은 있어서 고가나 한정판 의류는 한번 빌려갈 때 1.5회를 차감한다. 기간 내 계약된 횟수만큼 옷을 빌려 입지 못해도 계약은 자동으로 소멸된다. 명품 옷 대여 계약서에는 대여자의 이름과 주소, 주민번호 등이 기입된다. 고가의 옷을 빌려서 되돌려주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주민등록증을 복사하는 업체도 있다.

알음알음으로 소문난 서울 강남구의 한 대여업체는 하루에 찾는 고객만 100명이 넘는다. 최근에는 2호점을 내고 강남구와 서초구 등 가까운 지역에는 배달서비스까지 제공해주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인기가 많은 명품 옷은 아침 일찍 매장에 나오거나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대여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여 업체를 이용하는 고객은 접객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많지만 광고업체 관계자나 평범한 직업의 일반인 등도 찾는 빈도가 늘어나는 추세다.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아직까진 강남의 고급 접객업소 종업원들이 매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결혼식 등 특별한 행사를 앞두고 멋을 부리고 싶은 사람들도 주요 고객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최모(23·여)씨는 “학교 친구들처럼 명품 옷을 마음대로 사서 입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안돼 주로 대여업체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고객들의 대여 목록을 삭제해주기도 한다. 돈이 없어 명품 옷을 빌려 입는다는 게 알려지지 않기 원하는 고객의 심리를 반영했다. 한 렌털업체 관계자는 “특히 접객업소 종업원들은 명품 대여 목록을 통해 자신의 과거가 드러날까 민감해하는 경우가 많아 이 같은 서비스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