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 우체국-태국 김도연 선교사] 명절 고속도 통행료 안받아… 톨게이트 막힘없어 ‘행복한 귀성’
입력 2014-02-03 01:35 수정 2014-02-03 09:00
태국에서는 해가 바뀌면 새해 명절을 세 번 맞게 된다. 1월 1일은 전 세계 공통의 새해 첫날이다. 또 많은 중국계 태국인들의 영향으로 우리의 설과 같은 음력설을 지낸다. 그리고 수코타이왕국 시대부터 내려오는 태국 고유의 새해 명절인 ‘송크란’이 있다. 매년 4월 13일부터 15일까지 새해 명절로 지킨다. 태국에 살면서 유난히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선교사의 분주한 삶 탓도 있지만 한 해가 시작되면 계속 설날을 맞는 이유도 있지 않은가 싶다. 태국식 설날을 지내고 있는데 달력은 벌써 4월 중반을 지나고 있으니 말이다.
나를 놀라게 한 태국 명절 풍속도 중 하나는 지방으로 가는 고속도로의 톨게이트 풍경이다. 수도 방콕에서 북부나 동북부 지방으로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명절이 되면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통행료를 내는 시간이 걸리지 않아 명절인데도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은 거의 없는 편이다. 요즘 총선 때문에 친 정부와 반 정부 시위대간 충돌로 시내가 막히는 것을 제외하곤 말이다. 신기한 것은 태국 사람들은 시위로 인한 불편함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위대에 오히려 박수를 치며 격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3년 전, 방콕에서 약 450㎞ 떨어진 페차분도와 피싸눌록도의 경계에 있는 롬싹이라는 곳으로 전도여행을 갔다. 그곳은 마치 정글에 온 것 같았다. 전도지와 전도물품을 들고 가면서도 이런 곳에 누가 예수를 전하러 오겠는가 싶었다. 그곳에서 태국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할머니는 예수를 몰랐다.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내가 전하는 예수님보다도 나를 더 궁금해하셨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한국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 왔느냐? 이 산속까지 뭐하러 왔느냐?”
이것이 그 할머니의 질문이었다. 할머니는 오직 먼 나라 한국에 사는 사람이 이 태국까지, 그것도 수도 방콕에서 차로 7∼8시간을 달려야 올 수 있는 산속까지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목에 걸어 준 십자가 목걸이를 신기한 듯 만지며 내 얼굴만 살폈다.
여기까지 내가 왜 왔을까. 한국 사람인데 한국에서 살지 않고 이곳 태국까지, 그것도 아무도 살지 못할 것 같은 이 산속까지 왜 왔을까. 태국의 정글 같은 산속 마을의 이름도 모르는 태국 할머니의 질문은 선교사인 내 마음을 두드렸다.
“할머니, 예수님 때문입니다. 이 산속에 묻혀 사시는 할머니에게 예수님, 이 이름 석 자를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타국에서 명절을 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1년 내내 덥기만 한 나라에서 한국의 겨울철에 지내는 명절은 잊고 지내기 십상이다. 그러나 고향을 찾아 이동하는 태국인들을 보며 떠나온 한국의 부모님과 형제들 생각에 아련해지는 마음을 애써 지운다.
‘여기에 왜 왔을까’라는 그 할머니의 질문은 내게 달리는 말의 채찍이 됐다.
의료선교팀 방문으로 진료 봉사를 위해 찾은 치앙라이 시골교회에서 만난 40대 쿤에씨는 교회에 나온 지 20년이 훨씬 넘었다고 자랑했다. 선교 역사가 한국보다 훨씬 오래된 태국에서 북쪽 치앙마이, 치앙라이 지방은 복음의 관문이었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신앙 역사를 자랑하는 태국인을 가끔 볼 수 있다. 쿤에씨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환자방문 일지를 쓰려고 내 앞에 선 그의 몸에서 나는 지독한 담배 냄새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도대체 담배를 얼마나 피우느냐고 물어보니 10살 때부터 피우기 시작했는데 하루에 보통 2∼3갑을 피우는 소위 ‘골초’란다. 그가 자랑하는 신앙만큼이나 흡연의 역사도 길었다. 옆에 있던 부인은 자신이 13살 때 시집왔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편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 때문에 견딜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안되겠다 싶어 “그렇게 담배를 많이 피워서 냄새가 심한데 같이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느냐”며 담배를 끊도록 권면하고 함께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자 쿤에씨는 “아잔 킴. 내가 담배를 끊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으니 이제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습니다”라며 호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내 앞에 내놓았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피워오던 담배이니 말만 해서는 안 된다. 담배를 다 꺾어서 부러뜨려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라”고 했다. 그는 내 말대로 자신의 손으로 담뱃갑 속에서 담배를 꺼내 다 부러뜨려서 라이터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다. ‘담배만 버리면 됐지 라이터도 버려야 하느냐, 라이터는 버리기가 아깝다’며 아쉬워했지만 결국 다 버리고 왔다. 옆에 있던 부인은 손뼉을 치며 남편을 안아주고 뛸 듯이 기뻐했다. 쿤에씨의 흡연 역사를 아는 시골교회 태국인 목사와 교인들도 다 함성을 지르며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역시 하나님이 최고’라며 내 손을 꽉 잡았다.
태국의 시골이나 산동네에는 딸을 13∼14살쯤 결혼시키는 조혼 풍습이 있다. 40대에 벌써 30대 아들이 있는 것이다. 너무 일찍 결혼하고 출산을 한 탓에 여인들의 건강은 좋지 않다. 대부분 여인들이 허리와 무릎 등에 심한 고통을 호소한다. 변변한 진료 시설이 없을 뿐더러 형편도 여의치 않아 병원 진료를 잘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웃으며 나를 찾아와 남편인지 아들인지 구별이 잘 안 가는 아들을 소개하는 여인들의 아픔이 더 안쓰럽다.
어느 날 고등학교 교사인 푼숙 선생이 태국 보건소에서 저렴한 가격에 건강검진을 해주니 함께 가자며 아내를 찾아왔다. 평소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아내의 건강을 걱정했던 푼숙 선생이 좋은 기회라며 신이 나서 온 것이다. 아내는 옆에 있는 나에게도 같이 가자며 팔을 끌었다. 함께 몇 가지 검진을 받고 의사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나를 향해 손짓하며 빨리 오라고 불렀다. 간호사가 좀 유난스럽다 생각하며 의사 앞에 앉았는데 의사가 “대뜸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입니다.”
“직업이 뭔가요, 태국에서 무슨 일을 하나요?”
“저는 선교사입니다.”
“선교사라고요?”
“그렇습니다.”
“선교사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인가요?”
“무슨 말인지요, 왜 그러시지요?”
의사의 말은 내 건강상태가 심각하다며 모든 수치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다. 특히 심장이 부어있는데 원인은 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며 앞으로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한 달 후 다시 오라며 잔뜩 겁을 줬다.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내고 다시 의사를 찾아갔다. 검사를 다 마치고 지난번 그 의사와 마주 앉았다.
그래도 두 번째 보니 낯이 익다고 친근한 척하며 의사가 말했다.
“다행입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하세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의사의 그 말 한마디에 내 얼굴이 다시 바람 넣은 풍선처럼 펴지는 것을 느끼며 같이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스트레스 받지 말라니, 그게 어떻게 선교사인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지금까지 함께했던 태국 사람들, 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만나게 될 누구인지 모를 태국 영혼들의 얼굴이 영화처럼 지나갔다. 그 사람들이 내게 주는 것이 스트레스라면 그 꼬리에는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달려 있겠지. 하나님께서 오늘은 또 어떤 일에 나를 쓰실지 기대된다.
◇김도연 선교사 △1961년 서울 출생 △2003년 서울장신대, 2005년 장신대 신대원 목회연구과정 졸업 △2005년 장기 선교사로 태국 도착 △2007년 예장통합 서울동남노회에서 목사안수 △2012년 태국 순회선교센터 창립 △현재 태국순회선교사역, 태국어성경무료보급, 태국어 전도자료 무료 보급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