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선덕] 떡국을 먹었다

입력 2014-02-03 01:35


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떡국을 먹었다. 한 그릇도 아니고 여러 그릇. 재료만 다 있으면 라면보다 편한 떡국이라서 설 연휴 몇 끼는 떡국으로 해결한다. 자칭 주부1단으로서의 약삭빠름에 양심이 켕기지 않는 건 아니다. 집안 건강을 책임진 사람이 열량만 많은 음식을 몇 끼니나, 식구 모두 떡국을 좋아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어쨌거나 또 떡국을 먹고 말았는데 우리네 말 습관대로 하자면 그리하여 나이를 먹은 건지 나이가 든 건지? 문득 고개를 갸웃한다. 출생 한 갑자인 만 60세까지는 나이가 든 것이고 한 갑자 살아낸 후부터는 나이를 먹는 게 맞는 표현 아닐까. 나이를 먹고 먹어 없애 도로 0살. 그땐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도 우리를 보낸 곳,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어느 이는 만 60살 이후 받은 생은 여분이라서 다시 1살이 시작되며 그 여생은 세상을 위해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문제는 각자마다 정답이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일설에 사람은 128세 수명은 무난하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몇 백살은 우스운 도인이 지구 곳곳에 은둔해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회자된다. 동방삭은 삼천갑자를 살았다지 않은가. 관리를 잘하면 100세가 어렵지 않은 의학문명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오래 산다 한들 우주의 시간에서 우리네 나이는 티끌 한 점도 못 된다. 그렇기에 삶은 양이 아니라 질에 있다고 앞서간 분들이 진작 알려준 것이다. 밥을 먹었으면 최소한 밥값은 하며 살라고. 나이가 들면 나잇값 하며 옳게 늙으라고. 압니다, 알아. 밥값, 나잇값.

밥 한 가지만 단순셈법으로 해봐도 쌀을 생산한 농부와 쌀을 사기 위해 일을 한 분과 쌀을 씻어 안쳐 밥을 한 이의 수고. 그 삼위일체물이 밥이다. 밥, 전 과정의 대가가 될 만한 삶을 살고 있느냐면 내 경우 단연코 그렇지 못하다고 뻔뻔함을 무릅쓰며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만한 밥값을 하자면 돌아가신 마더 테레사 정도 살아야 한다. 얼마 전 텔레비전 방송 ‘별에서 온 아이들’이라는 데서 본 ‘베이비박스’를 지키는 목사님 내외와 그 일을 돕는 분들만큼 생명사랑을 실천해야 밥값이 된다. 도처에서 유기견과 길고양이들에게 남몰래 헌신하며 사는 분들, 그리고 인류 발전을 위해 일하는 분들 정도는 되어야 밥값을 하는 게다. 재벌도 권력자도 전혀 부럽지 않은 여느 날과 똑같은 오늘. 다만 밥값, 나잇값을 하는 분들만 부러우며 그분들 앞에 부끄러운, 아직은 새해아침이다.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