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 목사의 시편] 좀 내버려두세요
입력 2014-02-03 01:31
조선 건국 일화 중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경복궁을 지을 때 궁의 방향을 놓고 왕사(王師)인 무학대사는 동향을, 삼봉 정도전은 남향을 주장했다. 동쪽으로 궁의 방향을 정하면 자손이 번성할 것이나 태조의 기운은 쇠할 것이고, 남쪽으로 방향을 정하면 군왕의 기운은 강성할 것이나 세자가 기운이 약할 것이라 하자, 태조가 궁의 방향을 정도전의 주장에 따라 남향으로 정했다 한다. 그래서일까? 조선 왕조 스물일곱 명의 임금 중 장남으로 세자가 되어 임금에 오른 경우가 매우 적거나 불행했다.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 방우는 조선개국 이듬해에 죽었다.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은 세자에서 폐위되었다. 세종의 장남 문종은 등극한 지 2년2개월 만에 사망하였고, 문종의 장남 단종은 폐위 당했고,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는 세자 책봉 후 시름시름 앓다가 이유도 모른 채 죽었고, 성종의 장남은 연산군이며, 중종의 장남 인종은 재위 9개월 만에 숨을 거두고, 선조의 장남 임해군은 유배되어 살해당하고,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는 독살 당했고, 숙종의 장남 경종은 4년간 재위했으나 자손도 없이 죽었고,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는 10세 때 병으로 죽고, 순조의 장남 효명세자는 세도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22세에 죽었다.
사실 경복궁 방향에 대한 이야기는 야사(野史)에 불과하다. 정말로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필자는 당시 세자의 빡빡한 일정에 의한 스트레스 때문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세자의 하루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새벽 4∼5시 문안 인사, 새벽 5∼7시 조강(아침공부), 7∼8시 아침식사, 9∼11시 주강(낮공부), 낮 11시∼1시 점심식사, 오후 3∼5시 석강(저녁공부), 오후 5∼7시 저녁식사, 밤 9∼10시 문안인사 후 취침. 그리고 중간에 ‘소대’와 ‘야대’라 하여 일종의 보충수업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정을 길게 소화하려면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이른바 강남 엄마들의 교육방법을 소개하고 부모들의 강압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는 자녀들을 보여주며, 한국교육의 실태를 냉정히 꼬집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이 방송에서는 아이들을 믿어주고 자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줄 때 대학입시뿐 아니라 대학 진학 이후에도 스스로 공부하고 자립하는 능력을 터득하게 됨을 보여주었다.
성경은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고 말씀한다. ‘노엽게 하다’라 번역된 헬라어 ‘에레디조’는 ‘분발하게 하다’라는 뜻도 있다. 자꾸만 자녀를 재촉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안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훨씬 높다.
유대인은 자녀들이 ‘물고기’를 달라고 할 때 그것을 주지 않고 ‘생선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 바다와 같이 넓은 세상을 마음껏 항해하다 보면 어느 땐가 생선 잡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내버려두는 게 좋지 않을까?
<거룩한빛광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