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어, 올 설에는 안 왔네

입력 2014-01-30 01:32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지난달 16일 오후 11시 인천 부평구 상가 골목에서 얼굴에 분장을 하고 누더기 옷을 입은 여성 ‘품바’ 2명이 ‘각설이 타령’에 맞춰 호박엿을 팔고 있었다. 2시간 동안 꼬박 춤을 추며 이들이 손에 쥔 것은 3만5000원. 7000원짜리 호박엿 다섯 세트만 팔렸다. 10년 넘게 ‘품바’로 일했다는 김모(55·여)씨는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는데 전통시장도 어려워져 품바를 찾는 행사가 없다”며 “그래서 공연하면서 호박엿 팔고 다니는데 이마저도 벌이가 나빠 그만두려 한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을 주름잡던 품바들이 사라지고 있다. 거지를 희화화한 분장으로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민요나 트로트를 부르며 흥을 돋우는 이들은 전통시장이 속속 현대화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인천에서 ‘민경이네 이벤트’를 운영하는 박종훈(56)씨는 대표적인 ‘이벤트형 품바’다. 품바 공연 의뢰가 줄어 고육지책으로 개업 이벤트나 회갑 잔치 등을 찾아 나서고 있다. 품바들에게 설은 대목이었지만 전통시장을 찾는 이들이 감소하면서 품바 일감도 함께 줄었다. 박씨는 “설이 되면 명절 분위기를 띄우려고 품바를 찾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거의 없다”며 “개업 이벤트도 젊은 고객들이 내레이터 모델을 선호하다보니 어르신들이 자주 찾는 업종으로 행사가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젊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공연을 하기 위해 랩이 들어간 노래도 틀지만 품바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되레 ‘거지’라고 놀리기 일쑤다. 하루 평균 6시간을 꼬박 추위에 떨며 홑겹의 개량한복을 입고 공연하는 일당은 10만원 선이다. 이마저도 최근에는 행사가 줄어 한 달 평균 일감이 10건도 되지 않는다. 전통 각설이 공연을 하는 ‘팔도 각설이 품바 연합회’ 소속 품바들도 자신들을 찾는 행사가 별로 없어 다른 이벤트로 활동을 확대하는 추세다.

김유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