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팝페라 아이콘 임형주 “벅찬 사랑 받은 만큼 나누는 삶 살고 싶어”

입력 2014-01-30 01:31


팝페라 테너 임형주(28)가 최근 발매한 정규 5집 ‘파이널리(Finally)’ 음반 속지엔 3페이지에 걸쳐 그의 이력이 빼곡히 적혀 있다. ‘1998년 12세의 나이로 첫 독집 앨범 발매’ ‘2003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최연소로 애국가 선창’ ‘2003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세계무대 데뷔 독창회’ ‘베를린 교향악단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 ‘지난해 국내 음반 판매량(누적) 100만장 돌파’….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청년이 거둔 성과라고 보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한 궤적이다. 무엇이 그의 이러한 성공을 가능케 한 것일까.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한 카페에서 만난 임형주는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내 목소리를 좋아해주셨기 때문인 것 같다”고 답했다.

“데뷔 당시만 해도 저는 노래에 관한 ‘테크닉’이 전혀 없었어요. 악보에 적힌 음(音)을 그대로 지르는 ‘돌직구 창법’이었죠(웃음). 그런데 이런 방식이 데뷔 당시 제 목소리를 돋보이게 한 거 같아요.”

그는 조심스럽게 자평했지만 실제로 임형주의 목소리는 색깔이 뚜렷하다.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질 만큼 맑고 청아한 음색이다. 그는 “특별한 목 관리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저는 칠삭둥이였어요. 그래서 그런지 면역력이 약한 편이죠. 감기도 자주 걸리고…. 그래서 목보다는 몸을 제대로 관리하는 데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조금만 관리를 안 해도 몸이 고장 나거든요.”

임형주를 만난 건 그가 발표한 5집 ‘파이널리’에 관한 이야길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앨범은 임형주가 4집 ‘더 로터스(The Lotus)’ 이후 8년 만에 발표한 정규 음반. 그는 좀 더 좋은 소릴 담기 위해 미국 뉴욕, 일본 도쿄, 독일 베를린, 체코 프라하 등을 오가며 앨범을 만들었다. 음반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6년, 음반에 쏟아 부은 제작비는 3억원에 달한다. 독일의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 체코의 프라하 시티 신포니에타 등 유럽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춘 앨범이다.

음반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임형주의 음악적 스펙트럼이다. ‘특기’인 클래식부터 재즈, 팝, 창작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 총 13곡을 앨범 한 장에 녹여냈다.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1987),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1988) 등 흘러간 옛 가요도 자신만의 색깔로 리메이크했다.

“8년 만에 정규 앨범을 내려고 하니 압박감이 상당했어요. 특히 요즘은 음반이 안 팔리는 시대잖아요? 음반명을 ‘마침내’라는 뜻을 가진 ‘파이널리(Finally)’로 지었지만 ‘마지막’을 뜻하는 ‘파이널(Final)’ 음반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드니 공을 많이 들이게 됐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스타덤에 올라서일까. 임형주는 20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조숙해 보였다. 가령 그는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집에서는 종합일간지 10개를 포함해 신문만 총 15개를 구독한다고 했다. 앞날이 창창한 20대지만 그는 언젠가 있을 은퇴 무대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임형주는 “남들보다 먼저 핀 꽃이니 남들보다 먼저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고 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화려한 시절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만큼 제가 가진 능력을 나누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그게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고요.”

임형주는 신앙이 두터운 걸로 유명하다. 그는 하나님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노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로 공연을 마무리할 때가 많다. “신앙이 없었다면 전 이미 도태됐을 거예요. 음악을 하다보면 ‘타락’의 손길이 많거든요. 하지만 신앙을 통해 이를 극복해왔던 거 같아요. 무대에 설 때도 하나님한테 의지하는 편이고요. 신앙은 제 삶의 ‘힐링’이에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