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제2 쇄빙선의 중요성

입력 2014-01-30 01:35

우리나라 극지(極地) 연구원들에게 연구 목적의 쇄빙선(碎氷船)은 꿈의 선박이었다. 쇄빙선은 얼어붙은 바다나 강의 얼음을 깨뜨려 부수고 뱃길을 내는 배를 말한다. 선체가 견고하고 다양한 특수 장비를 갖추고 있다.

연구원들의 바람이었던 세종과학기지가 1988년 남극 킹조지섬에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극지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쇄빙선을 갖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었다. 연구원들은 아라온호가 투입된 2010년 7월 이전에는 다른 나라의 쇄빙선을 얻어 타고 다녔다.

2주일가량 쇄빙선을 빌리는 데 세종과학기지 연간 운영비의 30%를 쓸 만큼 임차료가 버거웠다. 비싼 돈을 내고도 쇄빙선을 빌려준 나라의 연구일정을 피해 이용해야 했다. 쪽방 신세가 따로 없었다. 연구원들은 요로를 통해 쇄빙선의 중요성을 설명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99년 2월 기자가 방문한 세종과학기지에서 만난 연구원들은 “우리의 소원은 쇄빙선 보유”라고 노래했다.

아라온호의 투입은 우리나라 남·북극의 탐사·연구에 한 획을 긋는 쾌거였다. 극지과학 분야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각국의 쇄빙연구선 보유 현황에 따르면 러시아가 36척으로 가장 많고, 스웨덴 핀란드 캐나다 미국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쇄빙연구선을 한 척 이상 보유한 나라는 17개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극지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아라온호의 피로도는 한계점에 다다랐다. 지난해 아라온호의 항행(航行) 일수를 보면 일반항해 177일, 연구항해 84일, 외국기항 39일, 시험항해 32일, 수리 22일, 기지보급에 11일이 걸렸다. 365일 내내 짬을 낼 수 없이 바쁜 몸이다.

정부가 제2 아라온호 건조를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정책결정이다. 쇄빙선 1척으로는 내달 완공되는 남극 장보고과학기지가 제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위 62도에 위치한 세종과학기지가 기후변화 연구에 치중했다면 남위 74도에 있는 장보고과학기지는 빙하학 운석학 고층대기물리학 등으로 연구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제2 쇄빙선은 정부의 ‘북극종합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라는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기후·자원·경제성 측면에서 북극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북극해 북동항로에 이어 북서항로까지 열린 시대에 제2 쇄빙선 추진은 늦은 감마저 든다. 아라온호보다 훨씬 크고 성능이 뛰어난 쇄빙선을 늦어도 2020년까지 취항시킨다는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길 기대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