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군수품 납품 비리… 품질·성능 검사, 軍納업체에 맡긴게 화근
입력 2014-01-30 02:31
군수품 납품 비리는 성능 시험성적서 위·변조는 물론 짝퉁 부품 납품까지 다양하다. 방산업체의 협력업체가 비리를 주도하기도 하지만 주 계약업체가 직접 개입하기도 한다.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이 최근 3년간 납품된 군수품(13만6844품목)과 원자재류에 대한 업체 제출 공인시험성적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34개 업체가 125건을 위·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품원은 시험성적서 위·변조가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검증 범위를 확대해 5년 전 납품 물량까지 추가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성능 시험성적서 위·변조=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구난전차, K-9 자주포 등 우리 군의 핵심 체계장비에 납품되는 부품들의 시험성적서가 위·변조돼 군 전력화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방위사업청에 납품된 K-9 자주포의 절연판 등 원자재의 경우 공인시험성적서가 발행되지 않았는데도 협력업체가 성적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했다. K-9의 밀대(포탄에 장약을 밀어 넣는 금속봉) 등은 성능시험 결과 인장강도(잡아 당겼을 때 끊어지지 않고 견디는 정도)가 11.0으로 나왔는데 규격인 13.73을 맞추기 위해 13.8로 시험성적서를 변조했다.
수리온의 보조동력장치(APU)에 쓰이는 시동모터 원자재 시험성적서가 발행되지 않았는데도 협력업체는 구리(cu) 함량을 99.99로 규격(99.9 6이상)에 맞춘 성적서를 위조해 제출했다. 수리온 와이퍼조립체 원자재 납품업체는 구리 함량에 대한 검사결가 77.1로 규격(78.0∼85.0)에 미달했으나 수치를 79.1로 변조해 제출하기도 했다.
◇공구가게 제조 짝퉁 납품=해군의 차기 호위함에 정품이 아닌 짝퉁 부품이 공급된 사실도 드러났다. 호위함 안정 조타기는 6개 시스템으로 돼 있는데, 이 가운데 유압장치를 구성하는 레벨스위치에 독일산 정품이 아닌 국내산 모조 부품이 쓰인 것이다. 레벨스위치는 유압장치에 고장이 나거나 기름이 새면 이상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경우 함 안정 조타기 전체가 파손될 수 있다. 납품업체는 부산의 한 공구상가에서 150만원대 정품 대신 45만원짜리 모조 부품을 만들어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의 구조적 한계…방산 당국은 책임 없나=군수품 납품비리는 정부가 납품업체에 품질 및 성능 검사를 위임하는 구조에서 비롯됐다. 납품업체가 정부의 고위험도 품목 중심 품질보증과 주 계약업체의 협력업체 관리·감독에 대한 허점을 악용해 원가를 절감하고 촉박한 납기를 채우려는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발주처인 방사청과 품질검증기관인 기품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기품원이 최소한 공인시험성적서 인증기관으로부터 인증 여부만 확인했어도 시험성적서 위·변조는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방사청이 그동안 국내 방위산업 육성에 주력하다 보니 방산업체들이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품질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사청 관계자는 29일 “국내 방산업체 육성 위주의 정책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내수에 그치지 않고 방산업체들이 수출 역량을 갖추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품질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