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조민영] 대통령 한마디에 주민번호 대체 수단 만든다는데…

입력 2014-01-29 01:37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금융거래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1월 27일 금융위원회 실무 관계자)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는지 조속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1월 28일 신제윤 금융위원장)

사상 최악의 개인정보유출 사고로 금융당국은 연일 책임추궁을 당하고 있다. 어떤 책임을 물어도 ‘할 말이 없어서’일까. 27일까지만 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던 주민등록번호 대체가 하루 만에 ‘조속 검토’ 사항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민등록번호 대안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관행이 지나치다는 지적에는 이견이 없다. 정보 유출시 개인 식별이 너무 잘 되는 주민등록번호의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도 높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애당초 주민번호 대체가 어렵다고 한 데도 이유가 있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27일 금융거래 시 주민번호 수집을 예외로 둔다는 방침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자 “금융실명제 하에서는 주민번호와 사진과 지문 등을 통해 본인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더구나 대체 수단도 고민해 봤지만 금융사의 시스템 개편 문제는 둘째 치고 전 국민이 새 번호를 만들고 외워야 하는 불편도 크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주민번호 사용이 불가피하고, 대체수단도 검토해본 결과 좋은 대안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주민등록번호 대체 수단으로 아이핀, 운전면허 번호, 여권번호 등을 함께 쓰는 방안 등이 신속하게 검토대상으로 제시됐다. 금융실명제, 고객 불편, 금융사 시스템 개편 비용 문제 등에 대한 고민은 갑자기 사라졌다. 대통령 한마디에 그간의 고민을 뒤로 하는 정부의 태도는 또 다른 졸속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한다. 당장의 임시방편보다는 전체를 길게 보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

경제부 조민영 기자 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