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채용 실험’ 13일 만에 좌초… 총장 추천제·서류전형 도입 폐기

입력 2014-01-29 01:37

삼성의 채용 실험이 결국 좌초됐다. 대학 총장추천제, 서류전형 도입을 뼈대로 한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선안은 발표한 지 13일 만에 폐기됐다. 본래 뜻과 관계없이 대학 서열화, 지역차별이라는 덫에 걸렸다. 삼성은 모든 시도를 접고, 올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을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키로 했다.

이인용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28일 브리핑에서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선안을 전면 유보하기로 했다”며 “학벌·지역·성별을 불문하고 전문성과 인성을 갖춘 인재를 선발한다는 열린 채용 정신을 유지하면서 채용제도 개선안을 계속 연구·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이번 일로 각 대학과 취업준비생들에게 혼란을 줘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시도조차 못하고 새 채용제도가 휴지통으로 사라졌을까. 당초 삼성은 총장추천제와 서류전형 도입을 ‘삼성 고시’라는 폐해를 없앨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연간 20만명이 응시하면서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는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같은 시험으로 변질됐다. SSAT를 겨냥한 학원이 생겨나고 300여종에 이르는 참고서적까지 등장했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 취업 사교육, 엄청난 수의 탈락자 양산 등 각종 부작용은 고스란히 삼성의 몫이 됐다.

이에 따라 미래전략실은 인사팀에 채용제도 개편을 타진했다. 찬반이 엇갈리기도 했지만 대학에서 검증된 인재를 골라 줄 것이고, 숨은 ‘진주’를 찾을 좋은 제도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지난 24일부터 삼성이 각 대학에 배정한 추천 인원 숫자가 알려지면서 상황은 꼬이기 시작했다. 소위 잘나가는 대학에 더 많은 인원이 할당되는 등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호남에 인원이 적게 배정되는 등 지역 차별을 했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27일 “삼성의 채용제도는 배려와 공생 정신이 부족하다”며 강펀치를 날렸다. 야권에서도 ‘삼성이 대학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27일 밤부터 삼성은 고민에 빠졌다. 제도를 보완할 것인지, 전면 재검토할 것인지 등을 놓고 논의를 거듭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대학 서열화, 지역·여대 차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려 무슨 말을 해도 본래 뜻과 의도는 왜곡됐다”며 “이런 식으로 여론의 비판을 돌파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전면 백지화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재계 등에서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삼성답지 못했다고 꼬집는다. 추천제도에 대한 뿌리 깊은 의구심, 대학 서열화 논란 등을 예상치 못했다는 설명은 변명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면밀하게 검토하고 각 대학과 세밀하게 추진했어야 할 일을 마치 시혜를 베풀듯 처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삼성이 종전의 제도로 돌아가면서 취업준비생들은 다시 SSAT와 면접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다. 학점 3.0 이상, 어학능력 등 기본 조건만 충족하면 상·하반기 2차례 치르는 SSAT에 응시할 수 있다.다만 SSAT 내용 개편은 그대로 추진된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