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죽음 이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입력 2014-01-29 01:35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가까운 이들을 떠나보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이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가?’ 천국을 그저 막연하게만 그려봤다는 게 아닐까. 어쩌면 지금의 풍요에 젖어 천국은 그저 내가 이 땅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나서야 가는 곳쯤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천국/드와이트 무디 지음, 김경신 옮김/생명의말씀사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영원토록 거할 본향은 천국인지, 그것을 믿는다면 왜 천국을 사모해야 하는지, 천국 백성은 과연 누구인지….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서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는 소망을 부여잡아야 한다.”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 살았던 드와이트 무디(1837∼1899)는 이런 전제를 깔고 ‘천국’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토록 애틋하게 사랑하던 이들을 잊어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언젠가 영원한 햇빛이 비치는 나라에서 모든 결박을 벗고 축복 속에서 만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높고 높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내리는 사랑의 생명수를 마시며….”(17쪽) 이것이 천국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다. 천국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도 계신다. 또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을 사모할 이유가 충분하다. 또 이런 이유 때문에 천국 백성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죽음은 생명의 또다른 시작이다.

“어떤 사람이 죽어가는 이에게 ‘당신은 아직 산 자의 땅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죽어가는 이가 ‘아니오. 나는 아직 죽은 자의 땅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산 자의 땅으로 갈 것입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살며, 결코 죽지 않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곳은 죄와 사망과 눈물의 땅이나 저편에서는 결코 죽는 일이 없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요 다함이 없는 기쁨인 것이다.”(50쪽)

그럼에도 아직까지 죽음이 두려운가. 무디는 단호하게 한 순간이나마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라고 밝힌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은 이미 생명책에 있고 그러한 사실을 떠올리면 두려워할 까닭, 겁에 질릴 이유가 없다고 한다. 나아가 성경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2)라고 말한다. 오히려 핍박은 힘의 원천이 된다. 바울은 무수한 핍박과 박해를 받았고 그로 인해 커다란 상급을 받았음을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천국’ 책은 전반적으로 가볍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무디는 만났던 사람들이나 경험담, 들었던 이야기를 풀어 본향의 길로 안내한다.

톰 라이트 죽음 이후를 말하다/톰 라이트 지음, 박규태 옮김/IVP

무디의 책을 통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졌다면, ‘… 죽음 이후를 말하다’는 죽은 성도들을 추모하고 남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신학적 기반을 제시한 책이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그들이 ‘평안히 쉬기’를 기도한다. 때론 이렇게도 말한다. “별세한 신실한 이들의 영혼이 평안히 쉬게 하소서.” 가끔 “영광 가운데 부활하게 하소서”란 간구도 덧붙인다.

신학자인 톰 라이트는 이 기도는 잘못이라고 밝힌다. “우리가 몸의 부활을 믿는다면, 부활하는 순간 편히 쉬고 있는 것은 특히 혹은 오로지 ‘영혼’이 아니라 몸이다. ‘평안히 쉬다’라는 말을 묘비나 기념비에 새기는 것은 영혼만이 아니라 몸을, 실은 한 인격체 전체를 가리킨다.”(118쪽) 따라서 부활은 영혼의 부활이 아니라 몸의 부활, 한 인격체 전체의 부활이라는 것이다. 앞으론 ‘…의 영혼’이라는 말을 빼고 기도하라고 충고한다. “별세한 신실한 자들이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평안히 쉬고 영광 가운데 부활하게 하소서. 아멘.”

그러나 일부에선 죽은 자를 위해 올리는 기도를 반대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라이트는 “참된 기도는 사랑이 넘쳐흐르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자녀를 먼저 떠나보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자녀들을 향한 나의 사랑을 하나님께, 곧 나에게 자녀들을 주셨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데려가신 이유를 그분과 공유하는 건 당연하다. “사랑은 죽음의 자리에서도 그치지 않는다. 그친다면 그것은 심히 빈곤한 사랑일 뿐이다.”(116쪽)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