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도쿄에서 불기 시작한 反아베 바람

입력 2014-01-29 01:34


“지지율이 55.9%라지만 그 이유가 보수우경화 노선이나 親원전 때문은 아니다”

아베 신조 총리가 2012년 12월 취임한 이래 줄곧 보수우경화의 길로 내달려 왔던 일본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진원은 도쿄다. 이노세 나오키 전 도쿄도지사가 불법정치자금 문제로 1년 만에 중도하차해 다음 달 9일 보궐선거가 열리는데 여기에 반(反) 아베 노선의 후보가 둘이나 나왔다.

우선 주목되는 반 아베노선의 한 축은 전임 총리 그룹이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등 전 총리 4명에 숱한 정치인들을 총리로 세웠던 오자와 이치로 생활당 대표도 합류했다. 이들을 한데 묶은 것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급부상 중인 원전 철폐론이다. 이 그룹의 후보로 호소카와가 나섰다.

아베 정권은 마스조에 요이치 전 후생노동성 장관을 내세웠으나 선배 총리들과의 대립이 껄끄러울 터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아베의 정치적 멘토였고 2006년 1차 아베 내각 출범도 그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다. 반 아베그룹은 친(親)원전을 표방하고 있는 아베와 대립하는 모양새이지만 아베 정권의 대립적 동아시아 외교노선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은 듯하다.

특히 호소카와의 등장은 일본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민당 배제를 뜻하기 때문이다. 장기집권해 온 자민당은 탈냉전 직후 방향을 잃고 흔들렸고 1993년 군소 정당이 속출하는 가운데 치러진 선거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이에 호소카와는 자신이 속한 일본신당을 비롯해 자민당 탈당파들이 만든 신생당, 신당사키가케 등 8개 군소정당을 앞세워 비자민 연립내각을 주도했다.

호소카와 내각은 8개월 남짓으로 단명했으나 자민당의 영구집권을 막았다는 점에 의의가 크다. 무엇보다 일본에서도 정권 교체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상기시켰기에 이번 호소카와의 재등장은 아베 정권의 독주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암묵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 아베노선의 또 한 축은 우쓰노미야 겐지 전 일본변호사연합회장이다. 그는 아베 정권의 보수우경화 노선에 대해 정색하며 비판하는 양심세력의 한 사람이다. 지난해 말 출마 관련 인터뷰에서 “아베 정권은 특정비밀보호법, 집단적자위권 등을 내세워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최근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에서 마스조에 후보가 우위에 선 가운데 호소카와, 우쓰노미야 후보가 그 뒤를 쫓는 모양새다. 함께 실시된 이번 선거의 관심사 조사를 보면 고령화·복지 26.7%, 경기·고용 23%, 원전·에너지문제 18.5%, 재해대책 12.9% 등으로 유권자들은 원전·에너지문제를 빼면 반 아베노선이 주장하는 내용에 별로 공감하고 있지 않다.

호소카와, 우쓰노미야 중에서 과연 당선자가 나올 것인가. 혁신그룹의 유권자들은 탈원전에 찬성하는 경향이 있어 호소카와와 우쓰노미야 지지층이 겹칠 수 있고 그 때문에 마스조에가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분출되기 시작한 반 아베노선은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 아베 정권의 일방적인 독주에 제약을 가할 것이다.

26일 발표된 교도통신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집단적자위권 행사 허용추진에 대한 반대는 응답자의 53.8%로 찬성 37.1%를 크게 웃돌았다. 또 원전 재가동 반대도 60.2%나 됐다. 아베 정권 지지율이 55.9%임을 감안하면 지지는 하되 그 이유가 보수우경화 노선이나 친원전 때문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침체된 일본사회에 뭔가 활력을 불어넣어 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재 자민당은 중·참의원에서 과반인 데다 2016년에나 선거가 예정돼 있어 장기집권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독주는 의외로 빨리 끝날 수 있다. 반 아베노선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소비세 인상이 예정된 4월 이후 반발의 바람은 더 거세질 수 있다. 도쿄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을 누구보다 아베 정권이 직시해야 할 것이다. 안하무인의 독주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조용래 수석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