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밥심

입력 2014-01-29 01:34

쌀은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 가장 먼저 재배됐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국제 고고학회는 2003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굴된 볍씨 59톨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공식 인정했다. 소로리 볍씨는 1만5000년 전의 것으로 양쯔강 유역 볍씨보다 2000년 이상 앞선 것이다. 기록상으로는 ‘삼국사기’ 중 ‘백제본기’에 다루왕 6년(서기 33년) 2월에 논을 만들어 벼농사를 짓게 했다고 처음 나온다. 통일신라의 주식 유형을 보면 북부는 조, 남부는 보리, 귀족층은 쌀이었다. 고려시대에도 쌀이 물가의 기준이 되고 봉급으로 줄 정도로 귀했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문제지만 통일벼가 보급되기 전인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쌀이 부족해 ‘보릿고개’를 겪었다. 우리 민족은 쌀을 주식으로 하다 보니 예부터 쌀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밥 선 것은 사람 살려도 의원 선 것은 사람 죽인다’ ‘밥은 열 곳에 가 먹어도 잠은 한 곳에서 자랬다’ ‘영감 밥은 누워 먹고 아들 밥은 앉아 먹고 딸 밥은 서서 먹는다’ 등. 쌀을 뜻하는 한자 ‘미(米)’는 이삭에 쌀들이 촘촘히 달라붙은 모습을 본뜬 것이다. ‘八十八’이 합쳐진 모양이 쌀을 만들기 위해 88번이나 농부의 손이 간다는 뜻을 담았다는 속설도 있다.

토지박물관이 2007년 공개한 자료를 보면 고구려시대 밥그릇은 쌀 1300g이 들어간다. 350g의 쌀이 들어가는 요즘 밥그릇보다 4배 가까이 컸다. 고려시대 밥그릇은 1040g으로 지금보다 3배, 조선시대 밥그릇은 690g으로 2배가 더 컸다. 변변한 반찬이 많지 않고, 주전부리가 없던 시절이니 지금 사람들보다 식사량이 많았던 것 같다. 조선이 임진왜란 때 첩자를 보내 일본군의 군량미를 조사해보고 장기전이 아니라 단기전이라고 잘못 예상했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의 곡물 섭취량이 일본인보다 배 가까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도 옛말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은 지난해 1인당 하루에 밥 두 공기도 안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쳤다.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쌀밥에서 열량을 가장 많이 얻고 있지만 비중은 1998년 42%에서 2012년 31.6%로 계속 줄고 있다. 같은 기간 1인당 하루 술 섭취량은 48.9g에서 107.3g으로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1일 1식’ 열풍 등 다이어트에 열중하는 대신 외환위기 때보다 더 고단한 삶의 무게를 술기운에 의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