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꿈에 볼까 무서운 잔혹 영상 인터넷에 넘쳐난다

입력 2014-01-29 02:31


지난해 12월 회사원 김모(27·여)씨는 친구에게 카카오톡으로 동영상 메시지를 받았다. 무심코 재생 버튼을 누른 그는 곧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동영상에는 남성 두 명이 흉기로 살해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씨는 메시지를 보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마구 화를 냈지만 그는 “장난일 뿐”이라며 웃어 넘겼다.

박모(28·여)씨는 며칠 전 페이스북에 올라온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한 남성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는가 싶더니 미끄러져 머리에 끔찍한 부상을 입고 사망하는 장면이 나왔다. 단순한 유머 영상인 줄 알았던 박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박씨는 28일 “무심코 클릭했을 뿐인데 그런 끔찍한 장면이 나와 너무나 놀랐다. 다시는 상상하기 싫다”고 말했다.

이런 혐오 게시물이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다. 블랙박스가 보편화되면서 대형 교통사고 장면이 나도는 것은 물론 범죄 내용이 담긴 CCTV 화면, 동물 학대 영상, 살인 장면을 담은 스너프 필름 등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음란물과 달리 이런 혐오 게시물은 처벌할 근거가 마땅치 않아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혐오 게시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2010년 12월에는 고양이를 끔찍하게 학대한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돼 네티즌과 동물단체 회원들의 공분을 샀다. 2012년에는 바퀴벌레를 잡아 프라이팬에 튀긴 후 입에 넣고 씹는 장면을 찍은 사진 여러 장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해외 ‘쇼크 사이트’(충격적인 영상을 게재한 사이트)도 주된 출처 중 하나다. 이런 사이트에는 전쟁·범죄·사고 등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다수 게시돼 있다. 가족을 살해한 남성이 분노한 이웃 주민에게 맞아 숨진 장면, 감옥에서 보복 살해당한 뒤 참수된 조직폭력배의 시신 사진, 무단횡단 중 대형 트럭에 치여 끔찍하게 사망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 등이 수정 없이 그대로 공개된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등 전쟁 동영상도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다. 저격수가 적을 조준해 사격하는 동영상이나 백린탄 등 화학무기에 피폭돼 신체가 크게 훼손된 사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음란물과 달리 혐오 게시물은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어서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음란물이나 동물 학대, 명예훼손은 근거 법령이 있어 조치를 취하지만 폭력적이거나 혐오스런 영상 그 자체에 대해서는 따로 처벌할 만한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는 폭력성·잔혹성·혐오성이 심각해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게시물의 유통을 차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관계 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손을 놓고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혐오스럽고 끔찍한 장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폭력에 대한 학습 효과가 생겨 범죄 유발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청소년의 모방심리를 자극할 우려가 있어 음란물 유포에 대한 처벌에 상응하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