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늙어감이 안타까워 때때옷 입어요… ‘孝의 아이콘’ 안동 농암종택
입력 2014-01-29 01:33
“기묘년 가을에 관아에서 양로연을 베풀어 부내 여든 살 이상 노인들을 찾아 사족에서 천민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불문하고 나이만 되면 다 오게 하니 수백 명에 이르렀다. 내·외청에 자리를 마련하고 어버이를 중심으로 풍성한 음식을 대접하니, 보는 사람들도 칭찬하고 나도 자랑스럽다.’(1519년 가을, ‘농암선생문집’ 중에서)
적선애일(積善愛日). 밖에서는 선행을 쌓고 안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뜻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에 위치한 농암종택의 가훈이다.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란 뜻의 가송리에 둥지를 튼 농암종택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오는 곳. 지금은 농암의 17대 종손인 이성원(62)씨가 종부와 함께 종택을 지키고 있다. 농암종택은 원래 도산서원 인근 분천에 있었지만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는 바람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경상도관찰사와 호조참판 등을 지낸 조선 중기 문신 농암은 ‘어부가’로 유명하다. 농암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은 그가 조선시대 효의 아이콘이라는 사실이다. 농암은 안동부사를 지내던 시절, 부모를 비롯해 지역 노인 수백 명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벌였다. 반상과 남녀의 구별이 엄격하던 시대에 남녀귀천을 가리지 않고 80세 이상 노인을 한자리에 초청했으니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농암의 경로·효행 사상은 “자제와 노비들을 편애하지 않았고, 혼사도 문벌 집안을 찾지 않았으며, 사람을 대접함에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았다”고 평가한 퇴계 이황의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농암은 안동에 계신 부모를 더 잘 모시기 위해 지방근무를 자청했다. 벼슬 생활 중 30여년을 안동을 비롯한 인근 8개 고을에서 보낸 이유이다. 농암을 통해 유명세를 탄 효의 가풍은 당시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장수집안의 신화로 이어졌다. 농암 89세, 아버지 98세, 어머니 85세, 조부 84세, 조모 77세 등으로, 15∼16세기 한 가문의 평균 수명이 200여년에 걸쳐 80세를 넘었다. 당시 평균 수명이 50세 안팎이었으니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일이었다.
1519년에 경로잔치를 열었던 그날의 모습은 보물 제1202호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에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이 그림에서 농암은 부모와 노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때때옷을 입고 있다. 농암은 어버이 살아 계신 나날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지은 애일당(愛日堂)에서 명절 때마다 아버지를 포함한 이웃 노인을 모시고 어린아이처럼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 농암은 70세가 넘어서까지도 그렇게 했다. 농암을 ‘때때옷의 선비’로 부르는 까닭이다. 이 아름다운 가문의 전통은 1902년까지 400년 가까이 이어졌다.
오늘날은 어떤가.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세 들어 사는 할머니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겨울옷을 아홉 겹이나 입고 죽은 지 5년 만에 백골로 발견되는 등 무관심의 세상을 살고 있다. 지금도 신문지상에는 가족이나 이웃의 보살핌 없이 홀로 살다 홀로 죽어가는 독거노인들에 관한 기사가 넘쳐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황혼이혼과 조기사별 등으로 2013년 기준 전국의 독거노인이 125만명을 웃돌고 있다. 약 500년 전 ‘때때옷의 선비’는 상상도 못할 서글픈 세태다.
설날을 앞두고 마음은 벌써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농암처럼 때때옷 입고 춤을 추지는 못할지라도 올 설에는 어버이가 기거하는 방은 따뜻한지,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일이다. 귀가 어두워 몇 번씩 묻고, 했던 말 또 해도 귀찮아하지 말자. 나 어릴 적 말 배운다고 어버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수없이 했던 날을 기억하자. 이웃에 독거노인이 살고 있으면 찾아뵙고 세배라도 드리자. ‘착한 사회’는 대단한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농암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소외이웃에 따뜻한 관심을 가지는 사회, 이런 세상이 ‘착한 사회’가 아닐까.
◇농암종택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명품고택
문화체육관광부가 명품고택으로 선정한 농암종택은 사랑채와 안채, 긍구당, 사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한속정사, 서재, 동재, 강당 등으로 구성된 분강서원, 그리고 애일당(愛日堂) 등이 더해져 하나의 마을을 이룬다.
팔작지붕이 멋스러운 긍구당은 농암이 태어나고 임종한 곳으로 농암종택을 대표한다. 애일당은 농암이 때때옷 입고 춤을 추던 효의 현장으로 낙동강 상류 벽력암 아래에 있다.
이 종택이 주변과 어우러져 빚어낸 풍경은 퇴계 이황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극찬한 퇴계오솔길 최고의 절경이다. ‘도산구곡’ 중 제8경인 가송협곡의 품에 안긴 농암종택 앞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주변에 고산정, 월명담, 학소대 등 명소가 이어진다.
안동=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