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설 목사의 시편] 너그러움이 없는 정의
입력 2014-01-29 01:35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사셨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한숨 지으셨던 생각이 난다. 철부지였을 때는 그 한숨이 무슨 의미였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난한 살림살이에 자식들을 시집장가 보낼 때마다 논과 밭뙈기가 팔려나갔던 것 같다. 매일 쇠꼴을 베다 먹이고, 여물을 끓여 먹이며 돌보던 자식 같은 소도 팔아야 했다. 1960년대 우리 농민들의 삶은 눈물이 날 만큼 힘겨웠다.
내가 처음 목회를 시작한 곳은 서른여덟 가구의 주민들이 배추농사를 지으며 살던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30대 초반에 농촌목회에 뛰어들었지만 농민들의 삶을 보듬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그들의 고단한 삶은 희망이 없는 듯 보였다. 그들은 농부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들이 못난 탓이라 여겼다. 도움 줄 것 없는 목회자의 무력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농민들을 속이거나 불이익을 주는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때로는 ‘마을 지킴이’라는 생각으로 소외된 농민들의 삶을 대변하려고 격한 모습을 보였다.
어느 날 큰 짐을 오토바이에 싣고 비포장 길을 달려 우리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앞서 가던 승용차에서 차창 밖으로 쓰레기봉투를 버리는 것이 아닌가. 오토바이에 실린 짐이 땅에 떨어져 끌리는 것도 모른 채 경적을 울리며 승용차를 쫓아갔다. 차를 세운 뒤 운전자에게 “아저씨. 왜 쓰레기를 우리 마을에 버립니까. 가지고 가세요”라며 쓰레기봉투를 승용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미안해하는 운전자의 표정을 보면서 의기양양했다. 승용차에 아이들도 타고 있었지만 그가 자녀들에게 부끄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들의 옳지 않은 행위를 지적하는 데 생각이 머물러 있었다. 쓰레기봉투는 철없는 아이들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른들이 버린 쓰레기봉투로 간주하고 훈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을을 사랑하겠다는 생각은 옳았지만 관용 있는 태도는 아니었다. 성숙하지 못한 내 인격으로 “옳은 일이냐, 그른 일이냐”만을 놓고 따졌던 단순한 행동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리스도인의 넓은 마음으로 대하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다. 그들이 지나간 뒤 조용히 쓰레기봉투를 처리하면 됐을 일이다. 너그러움 없는 정의는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너그럽게 대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남의 약점과 허물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은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인격을 나타내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죄를 범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6:1)고 교훈했다. 눈으로 보고 비판하는 것이 많은 시대에 우리가 얼마나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는지 물어볼 일이다. 성급한 말과 행동으로 이웃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는 영성이 필요하다.
<여주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