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발 금융시장 불안] 외환보유액 늘고 경상수지 흑자 유지… 97년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

입력 2014-01-28 01:34


1997년 아시아를 뒤흔든 외환위기와 지금 일부 신흥국의 위기는 얼마나 닮았을까. 미국의 통화긴축 정책이 여러 신흥국의 통화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는 것은 같다. 그러나 많은 신흥국에서 외환보유액, 경상수지, 환율변동 대응력 등이 개선됐다는 점은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

현재 신흥국 위기의 주된 원인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산매입 규모를 이달부터 100억 달러 줄이기로 한 데 이어 추가로 100억 달러를 더 줄일 것으로 전망돼 신흥국에 있던 자금이 빠르게 선진국 시장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의 자산매입 축소는 금리 인상을 통한 통화긴축과 같은 효과를 낸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도 미국 통화정책이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으로 돌아서면서 촉발됐다. 당시 고속 성장한 동아시아 신흥국으로 대거 몰렸던 핫머니(단기 투기성 자금)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97년 일본의 정책 방향도 지금과 비슷하다. 당시 일본은 소비세를 3%에서 5%로 올렸고, 17년이 지난 지금 일본 정부는 5%에서 8%로의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이 같은 긴축정책은 투기자금의 신흥국 이탈을 부추긴다.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나쁜 나라가 타깃이 된다는 것도 97년 상황과 공통점이다. 최근 아르헨티나 터키 등이 과도한 경상수지 적자와 빈약한 외환보유액으로 위기를 맞은 것처럼 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한국 등은 모두 경상수지 적자국가였다.

하지만 현재 한국처럼 외환보유액이 넉넉하고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는 신흥국이 많다는 점은 97년과 다르다. 또 90년대에는 고정환율제를 시행하던 신흥국 대부분이 현재는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어 헤지펀드의 공격에 예전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지난 25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닐 셔링 신흥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각 나라가 (사정이) 매우 다르며 아르헨티나는 특별한 케이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90년대에는 일본이 아시아 지역의 성장을 견인했지만 지금은 중국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전문가들은 중국경제가 어떤 흐름을 보이냐에 따라 신흥국 위기의 향배도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 상황이 97년과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이 많기 때문에 제2의 외환위기가 닥칠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한 상황이지만 마냥 마음을 놓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 펀더멘털이 양호해 위기의 전염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평가받더라도 신흥국을 기피하는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해 자본 유출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 정부가 “한국으로의 위기 전이 가능성은 작다”고 말하는 것처럼 97년 10월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은 “급격한 환율 변동이나 자본 유출은 없을 것”이라며 동남아 외환위기의 전염 우려를 일축했었다.

천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