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월급봉투는 안녕하십니까] 근로자 평균 14.7일… 연차휴가, 소진율 57.8% 불과
입력 2014-01-28 01:34
경제부처 A과장은 지난해 부여받은 연차휴가 20일 중 절반을 사용한 것처럼 꾸몄다. 일에 쫓겨 단 하루도 쓰지 못했지만 절반 이상 쓰지 않으면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중소기업 재직 2년차인 B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15일의 연차휴가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B씨가 사용한 연차는 단 3일. 회사가 어린이날 등 근무를 하지 않은 공휴일을 연차를 사용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근로자 1인 평균 연간 노동시간 2193시간(201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49시간보다 400시간 넘게 일하는 한국 근로자들에게 연차휴가는 ‘그림의 떡’이다.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 평균 연차휴가 발생 일수는 14.7일로 2년 전(11.4일)에 비해 3.4일 늘었다. 그러나 소진율은 61.4%에서 57.8%로 오히려 떨어졌다.
근로기준법상 1년에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는 이듬해 15일의 연차휴가가 주어지며, 25일을 한도로 근로기간이 1년 늘어날 때마다 하루씩 늘어난다.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회사는 이를 수당으로 보전해줘야 한다.
정부는 장시간 근로에 따른 노동생산성 저하 문제를 개선키 위해 연차휴가제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근로자 휴가 확대를 통한 소비 진작으로 내수 활성화도 내심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당당히 쉴 권리인 연차휴가는 여러 가지 이유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 특유의 집단적·협력적 성격의 일하는 방식 때문이다. 한 사람이 빠지면 작업이 되지 않거나 옆 근무자에게 부담이 지워지는 구조가 연차 소진의 제약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연차휴가보다는 연차수당을 선호하는 회사와 근로자들의 인식도 한몫하고 있다. ‘연차휴가=연말수당’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관성이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연차휴가를 공휴일 휴무로 대체하거나 연차수당을 떼어먹는 기업체들도 존재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까지 한국 근로자들이 연평균 노동시간을 OECD 수준인 1800시간으로 낮추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차휴가 촉진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선진국들은 연차휴가 소진율이 100%에 가깝다”며 “노동생산성 향상과 근로자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서는 노사 모두 휴가를 늘리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