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병 트라코마… 아프리카 주민들 실명 위기

입력 2014-01-28 02:32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가 위치한 오로미아주의 중심부 쿠유 마을. BBC 기자는 이 마을 학교에서 “눈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물었다.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한 학생은 “엄마가 한쪽 눈이 안 보인다. 다른 쪽 눈도 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할머니는 두 눈이 다 안 보인다”며 “속눈썹을 계속 뽑아내는데도 할머니는 아프다고 한다”고 했다.

본인 눈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동행한 의사가 검진을 해보자 이 학교 학생의 절반 이상이 ‘트라코마’ 질환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트라코마는 가장 오래된 감염성 질환 중 하나다. 에티오피아의 안과 전문의 원두 알레마예후 박사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거의 증상이 안 나타난다는 게 트라코마의 가장 무서운 점”이라고 말했다. 트라코마는 처음에는 증상이 없다. 하지만 오랜 기간 감염이 반복되면 눈꺼풀 안쪽에 심한 상처가 생기고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속눈썹이 각막에 상처를 내 심한 고통 속에 실명으로 이어진다.

◇가난의 질병 트라코마=트라코마는 실명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27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트라코마 유행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2억2890만명 중 220만명의 시력이 손상됐고 120만명은 아예 눈이 멀었다. 트라코마가 유행하고 있다고 확인됐거나 유행할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전 세계 53개국에 이른다. 특히 아프리카는 가장 취약하다. 29개국에 걸쳐 1억7592만명이 감염 위험 지역에 살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전체 인구의 89%가량인 7560만명이 트라코마 유행지역에 살면서 127만2600명이 실명 위기에 놓여있다. 쿠유 마을이 있는 오로미아주의 경우 3000만명의 주민 중 42%가량이 트라코마를 앓고 있다. 오로미아주에서만 20만명이 실명 직전이다.

트라코마는 가난의 병이다. WHO는 “트라코마의 유행은 위생상태가 안 좋은 지역으로 한정돼 있다”며 “씻을 물이 부족하고 기초적인 위생 시설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인구 밀집지역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어린이와 여성의 감염 확률이 높다. 어린이는 더러운 손으로 얼굴을 비비는 등 위생 관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이와 자주 접촉하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감염 확률이 2배나 높다.

◇WHO, “2020년까지 트라코마 퇴치하겠다”=WHO는 1997년 보건 관련 민간기구 및 각국 정부와 함께 2020년까지 트라코마를 퇴치하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핵심적인 전략은 ‘SAFE’ 프로그램이다. 중증 질환자의 수술(Surgery), 항생제 치료(Antibiotic treatment), 세수하기(Facial cleanness), 환경 개선 사업(Environmental improvement)의 영문 머리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실명 위기의 증증환자라도 10분 남짓의 간단한 수술이면 치료가 가능하다. 항생제 투여만으로도 실명 위기 전에 치료를 할 수 있다. 2012년 현재 아프리카에서 SAFE 프로그램으로 수술을 받은 사람은 15만5600여명, 항생제 치료를 받은 사람은 4578만여명으로 상당한 성과를 냈다. WHO는 환경 개선 작업을 통해 트라코마 유행 지역 거주 주민은 2011년 3140만명에서 2013년 2290만명으로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트라코마 퇴치를 위해서는 전염병 유행지역에 대한 정확한 확인 작업이 가장 급선무다. WHO 등은 전 세계 30개국 이상에 400만명의 조사인력을 투입, 2015년 3월까지 ‘트라코마 지도’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조사원들은 해당 지역의 방문 조사를 통해 트라코마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감염 의심 환자에게는 항생제를 제공한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따로 분류해 보고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29개국 중 가장 기본적인 ‘트라코마 지도’가 완성된 나라는 13개국에 불과하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