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노트] (4) 장갑, 손에 잡히는 멋

입력 2014-01-28 01:37


사용하는 물건의 유래를 알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애틋함이 생긴다. 일례로 장갑은 구석기 시대의 인류가 방한 목적으로 끼었던 주머니 모양의 싸개였고 고대에는 로마인들이 식사때 착용했으며 중세땐 계급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는가 하면 프랑수아 앙리 2세의 왕비인 캐트린 드 메디시스에 의해 호화로운 여성용 패션 품목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선보인 과거를 간직하고 있다.

장갑이 손 모양에 꼭 맞도록 탄생할 수 있었던 진보의 여정에는 재단 공정 혁신을 일군 프랑스의 장갑 제조인 자비에 주벵의 업적도 빼놓을 수 없다. 19세기 초 장갑은 신사의 에티켓을 책임지는 소지품으로 거듭났고, 1930년대 들어서는 상류층 여성이 선망하는 매끄럽고 흰 손을 만들어주는 보호막으로 몫을 더한다. 그 장황한 내막에 장갑을 쳐다보는 눈망울이 무거워진다.

한국을 떠나 겨울이 없는 지역에서 줄곧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장갑과 소원해졌다. 네다섯 살 무렵 엄마가 손수 짜 주신 빨갛고 흰 격자무늬 벙어리장갑 속에서 두 손은 행복했다. 장갑의 각별함을 다시 느낀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초보 에디터 시절 패션 화보의 스타일링을 연출하면서다. 코트의 소매 아래에서 빵긋 미소 짓는 색색의 장갑들이 맵시를 빚는 데 일조한다는 사실을.

2014년 장갑의 자태는 고혹적으로 살아 있다. 부드러운 소재와 날렵한 디자인, 섬세한 빛깔로 무장한 장갑 부대가 여인네의 스타일을 폼 나게 지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품격을 피력하는 멋의 매개자임을 입증한다.

김은정(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