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길성] K팝에서 창조경제 해법을
입력 2014-01-28 01:37
“세계 최고와의 협업, 세밀한 프로듀싱 전략, 치밀한 세계화 구상에 주목하라”
1992년 K팝의 원조격인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다. 1995년 디지털시대의 마법사 꿈을 품고 SM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된다. 이로부터 20년이 채 되기도 전에 K팝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새로운 음악 장르로 확고한 자리를 잡는다. 새로운 음악 장르에 담긴 메시지와 종합 예술적 재능이 세계인과의 소통에서 성공한 것이다.
그동안 K팝의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을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많은 논평과 논란이 있었다. ‘주류와 아류’ ‘국적과 무국적’ ‘근접과 혼종’의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특히 일본의 팝 문화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서양이나 일본의 모방과 혼종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K팝의 생산 양식을 너무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국내에서 홍콩 영화를 사례로 들이대며 K팝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제기하는 입장 역시 근거가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K팝을 단순히 음악 혹은 음악산업으로만 국한해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K팝에서 한국사회가 설정한 현안을 풀어내는 해법이 보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창조를 국정운영의 키워드로 설정하고 창조경제 구현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창조를 위한 각론이나 전략은 여전히 모색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창조경제의 성공 사례를 탐색하며 정부 초기에는 이스라엘에서, 영국에서 최근에는 스위스에서 그 해법을 찾아 나섰지만 원론적 수준에서의 제안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역사구조적 경로의존성이 강한 외국 모형을 단기간에 모방하고 이식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K팝과 창조의 연관성에 관심 가져볼 것을 주문한다. K팝은 창조적 혁신이다. 그리고 창조적 혁신 창작의 중심에 SM엔터테인먼트가 있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찍이 독파했다. 이들은 문화를 산업으로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문화와 시장의 관계를 숙지하며, 문화 생산과 그 확산의 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이 추진해야 할 세계화의 모형을 창안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세계 대중음악계는 SM을 혁신의 제작소라고 칭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여기서 핵심은 창조성의 제작(Manufacturing Creativity)이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창조성을 찍어낸다는 것이다. 본디 창조성과 제작은 함께 갈 수 없는 대립적 구성물이다. 창조성과 제작의 대립적 구성이 SM에서 녹아내린 것이다. 창조성의 제작은 세계 최고 음악진과의 협업에서 출발한다. 창조성 제작의 세계화다.
다음으로 매우 세밀한 내부 수정 과정인 음악 콘텐츠의 프로듀싱을 거치고, 강도 높은 훈련과 학습으로 최고 수준의 예능인을 양성한다. 창조성 제작의 현지화다. 그리고 디지털 환경을 통한 전 지구적 전파다. 또 다른 세계화로 완결된다. 이렇듯 창조성의 제작은 세계화-현지화-세계화’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특히 프로듀싱은 SM만의 독창적인 기술이며, 수없이 많은 과정을 통해 프로듀싱 공식을 매뉴얼로 만들었다. 매뉴얼로 만들었다는 것은 지속가능성의 또 다른 표현이다.
창조경제를 구상하고자 한다면 SM의 창조성 제작 모델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세계 최고와의 긴밀한 협업, 내부의 세밀한 프로듀싱 전략과 디지털 세계에 통용되는 치밀한 세계화 구상을 말이다.
창조를 거론한 참에 담대한 생각을 던져본다. 아날로그시대의 예술 중심지가 프랑스였다면 디지털시대의 예술 중심지로 한국이 될 수는 없는지. 과거 대중음악의 중심이 아메리칸 팝이고 브리티시 팝이었다면 디지털시대의 대중음악 중심은 K팝일 수는 없는지. 디지털 세계는 몰아치기가 가능하다. 성공이 더 성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와 규모와 범위로 말이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