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지독한 사랑

입력 2014-01-28 01:37

사계(沙溪) 김장생과 신독재(愼獨齋) 김집 부자는 율곡 이이의 학맥을 공고히 한 예학의 태두로 한 시대와 산림정치를 이끌었다. 사계는 숙종 3년, 신독재는 고종 20년에 각각 문묘에 배향됐다. 신독재의 동생 김반의 자손 중에는 김만기와 김만중 등 쟁쟁한 인물이 나왔다. 반상의 구별이 없어진 지 오래됐지만 광산 김씨의 자부심이다.

이런 사계도 고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신독재의 고집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직전 이조판서 딸과 결혼한 신독재는 부인의 장애 때문에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당시의 관행에 따라 율곡 선생의 서녀를 소실로 삼았다. 서녀였지만 총명한 새 부인은 현명했고 집안일도 잘했다. 문제는 적실 후손이 없었다는 것. 아버지의 권유를 물리치고 신독재는 소실과 해로했다.

흔히 양반이라면 축첩이 일상화되고 생활화된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른바 나라가 정한 국반은 그렇지 않았다. 미암(眉巖) 유희춘도 서울에서 혼자 벼슬할 때 소실 없이 혼자서 오랫동안 생활했다. 미암 선생은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껴 시골에 있는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 이를 자랑했다. 한참 뒤에 되돌아온 부인의 답장은 이랬다. 나이 들어 혼자 살면 몸에도 좋은 것을 그걸 자랑으로 아냐고. 미암일기에 나오는 얘기다.

이런 부부애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혼인은 하지 못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을 포함한 서구의 사랑 이야기도 적지 않다. 백미는 역시 왕의 자리를 포기한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의 사랑일 것이다. 1937년 6월 3일 프랑스 투르 근교의 샤토드캉데에서 세기의 결혼식이 치러진 그 자리에 하객은 불과 16명뿐이었지만 해로했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사랑에는 향기가 있다. 평생을 두고 천명을 연구한 사계 집안은 신독재로 인해 명성을 더하게 됐으며, 에드워드 8세는 왕위를 포기했지만 평생의 반려를 얻어 행복하게 살았다. 생각해보면 효를 최고의 가치로 알고 있던 시절 아버지의 부탁 아닌 부탁을 어기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주 제주도에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매화가 피었다. 매화는 선비의 고결한 인품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인내, 충실, 맑은 마음을 나타낸다. 한겨울 눈 속에도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매화야말로 꽃 중의 꽃이 아닐까. 설이 오기 전 남쪽에서 먼저 피는 매화를 남매라고 한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