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전화영업’ 금지] 개인정보 유출 피해 최소화 조치… 일부선 “과도” 속앓이

입력 2014-01-27 02:31


금융위원회 대책과 문제점

27일부터 전화로 ‘좋은 조건으로 줄 테니 대출 받으세요’라는 텔레마케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꺼낸 금융 당국의 마지막 카드다.

하지만 이미 소가 도망친 상태에서 외양간을 고친 격이어서 성난 민심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출 권유 금지에 정보 획득 경로도 알려야=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6일 임시회의를 열고 “정보유출로 생긴 국민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문자(SMS)·이메일·전화마케팅(TM)을 통한 금융사의 대출 권유와 모집 행위를 당분간 중단하도록 강력히 협조 요청했다”고 밝혔다. 만약 금융 당국의 지시를 어기고 전화 등을 이용해 영업하다 적발되면 현장지도와 함께 경영진 면담이 이뤄진다. 개선이 되지 않으면 ‘영업정지와 최고경영자 문책’이라는 중징계도 내려진다. 금융위는 다음 달 중 통제 방안을 제도화할 방침이다.

대출 모집인에게 영업을 떠넘기고 수수방관했던 금융사의 행태에도 제동이 걸린다. 신 위원장은 “금융사가 대출 모집인을 활용해 대출할 때에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 획득한 정보로 대출을 했는지 반드시 확인하도록 행정지도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사만 막는다고 해결될까=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이번 대책이 결국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선이 팽배하다. 금융당국의 칼날이 미치는 곳이 결국 금융사들뿐이어서다.

실제 이번 대책은 제도권 금융사로 한정돼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귀찮고, 광고를 들을 때마다 괴로워하는 미등록 대부업체에 대해서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해외에서 걸려 오는 보이스피싱도 무방비 상태다. 불법 도박이나 음란사이트 등에서도 수시로 날아오는 광고도 문제다.

갖가지 대책에도 피싱에 대한 우려감은 커지고만 있다. 이전까지는 이름·나이·직업 정도의 정보로 피싱을 했지만 이제는 20가지에 달하는 갖가지 정보로 속일 수 있어서다. 최근 스미싱으로 피해를 입은 회사원 이모(30)씨는 “아파트 수도비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수도료를 내라는 문자가 와서 나도 모르게 클릭을 했었다”며 “이번에 빠져나간 직장정보나 계좌번호, 차량보유여부 등을 이용해 속이기 시작하면 알고도 또 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른 탓에 등을 돌린 국민들은 ‘카드런’을 주말까지 이어가고 있다. 카드사에서 모든 기록을 지우고 떠나는 탈회(회원탈퇴) 건수는 25일까지 총 61만8000건에 달했다. 26일에도 오후 6시까지 3만2000건의 탈회자가 쏟아졌다. 카드 해지와 재발급수까지 합치면 무려 538만5000건에 이르렀다.

◇과도한 금융권 규제 우려도=금융권에서는 이번 규제가 여론 부담에 떠밀려 금융사를 과도하게 옥죄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가득하다. 영업이익 대부분을 전화와 SMS 등에 의존해 온 2금융권과 등록 대부업체들은 사실상의 영업정지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의 주범인 카드사들은 불만을 표시하지도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있다. 전화마케팅이 주를 이루는 카드슈랑스가 전면 금지될 경우 영업의 한 날개가 꺾일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카드슈랑스는 카드사들이 전화로 판매해 온 보험 상품으로 지난 한 해 카드사들의 판매액은 1조5428억원에 달할 정도였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소비자보호가 중요한 건 맞지만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던 금융사까지 막아서는 것은 너무한 측면이 있다”며 “금융당국이 당장의 여론 비판에 눌려 소비자보호와 금융업 발전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소비자단체에서도 이번 규제가 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사에서 대출 영업을 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편해지는 측면이 있지만 금융사가 제대로 살아남기가 더욱 어려워져 결국 공멸하게 될 것”이라며 “27일부터 이번 규제 철회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못 박았다. 고승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업무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일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영업 제약도 예상된다”면서도 “고용에도 우려가 있지만 금융사와 잘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