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 사랑으로 승화한 ‘위안부 恨’… 황금자 할머니 별세

입력 2014-01-27 02:3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가 26일 타계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황 할머니가 오전 1시30분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90세.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생존자는 55명으로 줄었다.

1924년 함경도에서 태어난 황 할머니는 13세 때 길을 가다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흥남의 한 유리공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3년 뒤 다시 간도 지방으로 끌려가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했다. 해방 후 조국에 돌아온 뒤에도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평생 홀로 살았다. 위안부 피해 후유증으로 대인기피증에 시달려 쉽게 사람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황 할머니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삶을 살았다. 여의치 않은 형편에 정부가 지원하는 임대아파트에 살면서도 생활지원금을 쓰지 않고 전부 모았다. 부지런히 빈병과 폐지를 주워 번 돈도 고스란히 저금했다. 보일러도 켜지 않고 어렵게 모은 돈으로 할머니는 2006년 4000만원, 2008년과 2010년 3000만원씩 세 차례에 걸쳐 강서구에 장학금 1억원을 기탁했다. 이 돈은 매년 ‘황금자 여사 장학금’으로 불우한 학생들에게 지급된다.

이런 사실이 알려져 2011년 7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에는 사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당시 황 할머니는 임차보증금, 은행예금 등 3000여만원을 재단법인 강서구 장학회에 사후 기탁하기로 했다.

강서구는 황 할머니의 장례를 사상 처음 ‘구민장’으로 치른다고 밝혔다. 노현송 구청장을 위원장으로 장의위원회를 구성,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12호실)에 분향소를 마련하고 사흘간의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가족이 없는 할머니의 장례식 상주는 강서구청 사회복지과 김정환(49) 장애인복지팀장이 맡았다. 김 팀장은 2002년 강서구 등촌3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며 할머니를 만난 인연으로 양아들이 됐다. 그는 “말씀을 잘 못하실 때도 할머니는 ‘일본이 사과했으면’이란 말은 또박또박 하셨다”며 “그 사과를 못 듣고 돌아가셔서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빈소에는 조문객 발길이 이어졌다. 할머니가 눈을 감기 전까지 곁을 지킨 간병인들은 영정 앞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등촌3동 성당 신자들은 위령 기도를 드리며 애도했다. 정대협 관계자들과 강서구청 직원들도 함께 빈소를 지켰다.

추모 물결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애도를 표했고 가수 겸 뮤지컬배우 JK김동욱은 “황금자 할머님의 명복을 빕니다…부디 지난 과거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시길”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영결식은 28일 오전 10시 구청에서 치러진다.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파주 천주교삼각지성당 하늘묘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전수민 최정욱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