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선덕] 마음 속 길고 긴 두 팔로
입력 2014-01-27 01:32
옛 사람들이 살아낸 모진 세월을 떠올리면 마음 아프다. 여름보다 겨울철에 더 그렇다. 추위는 더위와 달라서이리라. 선조들 생활상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쿠데타, 의거, 가뭄, 홍수, 굶주림 등을 겪은 부모 세대. 조금 멀리로는 개화백년 시절. 더 멀리 조상의, 조상의…. 그리하여 선사시대 삶에 이르노라면 협심증 환자처럼 괴로워진다. 오로지 험난하였을 게다. 춥고 배고프고 아프며 무섭고 외로웠을 게다. 어떤 고난이든 속수무책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여야만 했을 게다. 어느 하나 난관 아닌 게 없었을 조상들. 이미 지나간 시절, 가신 분들이지만 그 당시가 빙의라도 된 듯 고통스럽다. 그분들이라고 어쩌다 행복한 시간이야 없었으리. 그렇더라도 이쪽에서 보는 옛 사람들 삶의 많은 부분은 눈물겹다.
옛사람들 기리는 짧은 글을 전에 이렇게 써보기도 하였다.
“우리의 부모, 부모의 부모들 시절은 너나없이 고생이 밥이었다. 우리가 그 열매를 먹고 있다는 걸 자주 잊어 미안하고 죄스럽다. 결코 잊으면 안 되건만 까맣게 잊고 산다. 옛 사람들 모두가 가엾어 견딜 수 없어진다. 아, 옛 분들이시여. 시인의 시 구절이 자막이 되어 뇌리를 스친다. 생각느니…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지.”
국가행사장에서 순국선열에게 묵념하듯 문인단체도 문학행사 도입부에 세상 떠난 선배작가를 기리며 묵념하는 시간이 있다. 무명이든, 유명하든 그분들이 배를 곯으며 갈고 닦은 문학의 길, 예술의 길이 있어 우리 후배가 그 길을 여전히 갈 수 있게 해준 데에 예의를 차리는 것이다. 아무리 우뚝하게 선 작가라 해도 혼자 잘나 하루아침에 뚝 떨어져 내려오지 않았다는 의미도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집안, 어느 사람이든 갑자기 존재하는 법은 없다. 조상이 있어서 오늘 여기 이 자리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조상의 피땀으로 이룬 길 끝에 우리가 있다. 이 끝이 시작점이 되며 우리가 가는 길은 자손에게 다시 이정표와 길이 되리라.
설 즈음이라 하는 소리가 아니고 더러 한 번씩 이래 봐도 좋을 노릇이다. 차례를 지내는 집이든 아니든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를 있게 한 그분들의 세월을 기억하자고. 간난의 세월을 아프게 살아내고 간 얼굴 모르는 우리네 선조, 신석기·구석기시대, 나아가 우리의 모든 조상을 마음 속 길고 긴 두 팔로 한꺼번에 따뜻하게 안아드려도 좋으리. 꼭 명절이어서가 아니라.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