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여의도 정치를 싫어한다는 것은

입력 2014-01-27 01:32


서울 삼청동과 여의도는 러시아워를 피하면 자동차로 20분 이내 거리다. 그렇지만 삼청동 한가운데의 청와대와 여의도 서쪽 국회의사당의 심리적 거리는 수백㎞는 족히 돼 보인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군사독재 시대가 끝난 이후 대통령들은 대부분 이 심리적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 출신 대통령들조차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의도 정치’와 담을 쌓는 일을 반복해 왔다.

과거나 현재나 우리들에게 한국 정치는 일정 부분 이상으로 혐오의 대상이다. 민생과는 동떨어진 채 정쟁에 올인하는 정치인들의 연속 시리즈를 수십 년 동안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어딘가 맑지 못하고, 어딘가 뒷거래만 오갈 것 같은 분위기. 영화 장르로 치면 ‘필름 느와르’에 해당할 듯한 아우라(aura)가 정치란 단어를 휘감아 왔다. 한국 사람의 대다수가 정치를 싫어하는 셈이다.

주지하듯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여의도 정치와 담을 쌓았다. 기업인 시절부터 실천보다 말에 이끌리는 한국 정치의 비능률을 싫어했던 그는 집권 후에도 웬만한 사안에 대해선 야당뿐 아니라 여당과도 호흡하지 않았다. 집권 초반의 미국산 쇠고기 파문이 결정적이긴 했지만, ‘명박산성’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현실정치와 멀찍이 떨어져 지냈다. 그리고는 정례 라디오연설 등으로 대(對)국민 직접정치에 나섰다.

국회의원 시절 누구보다도 정치인다웠던 노무현 전대통령은 집권 이후 ‘아주’ 달라졌다. 자신의 진보색깔 국정운영에 보수정당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자, “정말 못해먹겠다”고 대놓고 푸념을 했다. 마지노선을 넘을 정도로 야당과 대립적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야당뿐 아니라 상당수의 집권여당 의원들까지 동조한 초유의 대통령 국회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불행까지 겪어야 했다. 진정한 의미의 첫 문민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40년 정치인 역정을 거쳤지만 ‘정치 혐오 증후군’을 벗어나지 못했다.

역대 대통령 중 현실 정치와 비교적 담을 쌓지 않은 인물은 김대중 전대통령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 집권한 그가 핵심 정책들을 정부 부처가 아닌 여당 정책위원회를 통해 컨트롤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밑바닥까지 떨어진 한국의 신인도를 끌어올릴 비상 경제대책을 추진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를 프루던스(prudence)라고 정의했다. 현실 속에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적 지혜라는 뜻이다. 우리 대통령들이 여의도 정치를 싫어했던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정도(正道)를 벗어난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이기보다는 정치인과 정당들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한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국정을 운영해야 하고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 국가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데, 자꾸 정치가 발목을 잡으니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개념을 발전시켜 프루던스에는 겸손과 인내심이 포함된다고 했다. 자신의 신념이 오류일 수도 있다는 자기반성, 반대자의 반대를 참아내는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정치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역대 대통령들이 결코 성공적으로 정치를 고민했다고 할 수는 없다. 지난 1년 간 줄기차게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당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남은 4년의 정치지형도를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하다. 현실 정치를 싫어하면서도, 견뎌낼 수 있을지 말이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