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나래] 미학 오디세이
입력 2014-01-27 02:31
1994년 새길 출판사에서 나온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2’는 독일 유학을 앞둔 저자가 항공료라도 벌어볼 생각에 쓴 책이다. 286 컴퓨터로 원고를 썼다. 당시만 해도 미학 분야는 생소했다. 책에 등장한 모리츠 에셔, 르네 마그리트, 조반니 피라네시의 작품은 낯설었다. 서술 형식도 파격적이었다. 그의 누이 진은숙 작곡가가 권한 책, 미국의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에서 영감을 받아 ‘3성 대위법’에 따랐다. 독자적인 세 가지 멜로디가 합쳐지며 화성을 이루듯 세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미학의 개념을 풀었다.
출판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경영난으로 새길에서 인세가 지급되지 않아 2001년 출판사 ‘현실과과학’에서 재출간했다. 저작권과 인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진중권은 2003년엔 ‘휴머니스트’로 옮겨 ‘미학 오디세이 3권’과 ‘미학 오디세이 1·2권 완결 개정판’을 냈다. 휴머니스트는 새길에서 이 책을 편집했던 김학원씨가 푸른숲 편집주간 등을 거쳐 2001년 문을 연 출판사다. 이에 발끈한 현실과과학은 저자와 휴머니스트를 상대로 서적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송사는 정리됐지만 겹치기 출판 파문의 여진이 한동안 계속됐다.
저자의 행보도 평범치 않았다. 99년 독일에서 귀국한 뒤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진보적인 성향의 논객으로도 활동 중이다. TV 토론이나 트위터에서 그가 한 말이나 던진 글귀 때문에 인터넷에서 종일 시비가 끊이지 않는 날도 있다. 저자를 놓고 극명하게 엇갈리는 호불호가 책에 대한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어쨌든 미학 오디세이는 20년 간 살아남았다. 지금까지 80만여부가 나가며 미학뿐 아니라 인문 분야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달 초에는 20주년 기념판이 출간됐다. 책을 읽고 미학이란 학문에 눈을 떴다거나, 전공을 바꿨다는 독자들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지금도 팔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대체할 만한 책이 별로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 궁금한 건 그 다음이다. 2014년, 독자 앞에 미답의 세계를 보여줄 다른 저자가 탄생할 수 있을까. 괜찮은 책이 나오더라도 시장에서 20년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저자가 던지는 지적 자극을 그 자체로 흔쾌히 받아들일 독자는 또 얼마나 될까. 저자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한국 출판 시장. 과연 또 다른 ‘출판 오디세이’는 가능할지 궁금하다.
김나래 차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