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노출증 ‘어뷰징’] 클릭 수를 늘려라… 기사 융단폭격

입력 2014-01-25 01:34


기사 하나가 인터넷에 올라온다. 10분 뒤 제목만 살짝 바꾼 같은 기사가 또 올라온다. 20분 뒤 비슷한 표현의 다른 제목 기사가 등장한다. ‘기사 어뷰징’ 이야기다.

언론사가 같은 기사를 반복 전송하는 행위를 뜻하는 어뷰징은 네이버가 2006년 12월 키워드 입력을 통한 검색 기사를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 화면으로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바꾼 이후 고질병 수준에 와 있다. 언론사들은 네티즌들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은 기사리스트 맨 위에 자사의 기사가 놓이도록 해 조회수를 높이려고 어뷰징을 한다. 조회수가 광고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쉽게 올라오고 빨리 써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어뷰징의 대상이 된다. 연예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말한 개인사와 가십이 대표적이다. 배우 오승은은 지난 19일 SBS ‘도전 1000곡’에 출연해 “남편 덕분에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산다”고 말했다. ‘오승은’은 곧바로 네이버 등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올랐다. 언론사들은 오승은의 언급을 근거로 기사를 작성했다.

‘도전 1000곡’은 일요일 오전 8시10분부터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유력 종합일간지 ○○일보 인터넷판에는 프로그램이 끝난 지 30여분 후인 9시42분에 첫 기사가 올라온 후 20분∼1시간 간격으로 기사 5건이 게재됐다. 다음날 오전에도 2건이 나왔다. 제목만 조금 바꾼 같은 내용의 기사가 7건이나 등장한 것이다. ○○일보뿐이 아니다. 많은 언론사가 비슷한 방식의 기사 어뷰징을 하고 있다.

네티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일수록 전송되는 기사가 많아진다. 지난달 2일 호주 출신 모델 미란다 커의 열애설 기사는 무려 258건에 달했다. 종합일간지, 스포츠·연예 매체, 경제지, 온라인신문을 막론하고 너나없이 같은 내용의 기사를 무더기로 쏟아내는 데 열을 올린 셈이다.

언론사들이 동일한 기사를 쌓아놓으면 포털 사이트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는 독자들은 방해를 받게 된다. 정도가 심해지면 정보를 찾던 독자가 포기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언론사의 인력 낭비 문제도 있다.

2007년 11월에 문화관광부는 언론사의 뉴스 반복전송이나 부당전송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언론사와 포털의 뉴스 콘텐츠 이용 계약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네이버가 키워드 검색 기사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꾼 이후 언론사의 어뷰징 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1년여 만에 나온 조치지만 어뷰징을 막지는 못했다.

지금도 언론사들은 어뷰징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아니,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뷰징으로 인한 조회수 상승에 중독된 탓이다. 포털은 언론사 어뷰징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이용자 유입 이득이 있기 때문에 검색어 서비스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어뷰징 문제 해결책에 대한 질문에 “해당 언론사에 일일이 항의하고 있다”고만 대답했다.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24일 “시장 환경이 각박해도 언론은 사회의 공기라는 본연의 역할에 더욱 노력하고, 포털은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해 수익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까지 생각하는 것에서 어뷰징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어뷰징(abusing)

사전적 의미는 남용, 오용, 폐해 등이다. 기사 어뷰징은 인터넷에서 조회수 상승을 노리고 같은 기사를 반복 전송하는 행위를 뜻한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서비스에 오르는 소식이 주요 대상이다. 독자가 해당 검색어로 기사를 찾을 때 자사의 기사가 뉴스리스트 맨 위에 보이도록 하거나 기사 노출 빈도를 높이기 위해 어뷰징이 이뤄진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