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터키 통화가치 급락… 신흥국發 금융위기 재연되나
입력 2014-01-25 01:34
아르헨티나, 터키, 태국 등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에 따른 자금 유출 우려와 정정 불안이 겹친 탓이다. 2012년 유럽 재정위기에 맞먹는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예상도 제기돼 우리 경제도 신흥국 위기 확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전날보다 11%가량 급락하며 달러당 8페소에 근접했다. 이날 하락폭은 아르헨티나 경제가 최악의 위기를 겪던 2002년 이후 가장 큰 것이다.
한국은행 한상섭 국제경제부장은 24일 “외환보유액이 급감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외환 시장 개입을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페소화 가치가 급락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페소화를 떠받치기 위해 59억 달러를 매각하면서 2006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아르헨티나 외환보유액은 300억 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2010년 9.2% 성장률을 기록할 만큼 호황이었다. 그러나 2011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강력한 환율 통제 정책을 시행하면서 기업 투자가 끊기고 물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 부작용이 커졌다.
정정 불안으로 인한 자금 유출로 터키 리라화도 23일 장중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반정부시위가 한창인 태국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이탈해 바트화 가치는 2010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도 세계 최대 규모의 백금 광산 파업에 대한 우려 등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흥국의 통화가치 하락은 미국 양적완화 축소와 맞물려 있다. 신흥시장에 흘러든 돈이 양적완화 축소로 다시 선진국으로 회귀할 조짐 때문이다.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위축세로 돌아선 것도 영향을 미쳤다. 브라질·인도·남아공·인도네시아·터키 등이 올해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정 불안에 따른 투자금 이탈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센터 김용준 상황정보실 부장은 “지난해 5∼6월처럼 신흥국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지속되고 외환보유액 수준도 과거 위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호해 금융시장 급변 가능성은 적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자금 재조정 과정에서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성욱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아르헨티나 등의 금융불안이 외환위기 사태로까지 이어지면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자금 유출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허문종 거시분석실 수석연구원은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동남아 및 중남미 지역에 대한 수출 비중을 고려할 때 신흥국 경기침체가 심화되면 유럽 재정 위기 확산 때의 충격도 예상된다”며 “수출 둔화로 인해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3% 미만으로 둔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장희 이경원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