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노출증 ‘어뷰징’] 더 빨리… 더 많이… 인터넷 기사 무차별 살포
입력 2014-01-25 01:35
‘기사 어뷰징’은 2007년부터 문제로 떠올랐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2006년 12월 키워드를 입력해 찾는 기사의 운용 방식을 바꿨다. 그 전까지는 독자가 기사제목을 클릭하면 네이버 안에 저장된 기사가 소개됐지만(인링크) 이후부터는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의 기사 화면으로 연결되도록 한 것이다(아웃링크).
그 결과 포털사이트에 기사를 제공하는 언론사의 조회수가 급속히 상승했다. 언론사들은 광고수익으로 이어지는 조회수를 더 높이는 방식을 모색했다. 키워드 검색 결과 드러나는 자사 기사가 타 매체 기사보다 먼저 선택되는 게 중요해졌다. 같은 기사를 반복 전송하는 기사 어뷰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유다.
◇똑같은 기사를 30개 넘게 전송=기사 어뷰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7년이 넘었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바뀐 것은 거의 없다. 네이버에서 지난 13일과 지난달 2일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상위권에 각각 올랐던 배우 ‘곽도원’과 호주 출신 모델 ‘미란다 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곽도원은 영화 시사회 현장에서 ‘미연이’라는 여자친구의 실명을 공개했고, 미란다 커는 카지노 재벌과의 열애 소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종합일간지를 비롯해 스포츠신문, 경제지, 연예전문지 등은 경쟁적으로 기사를 쏟아냈고, 포털사이트는 관련기사로 가득 찼다.
예를 들어 ○○일보는 지난 13일 곽도원 관련기사 19건을 1∼2시간 간격으로 포털사이트를 통해 쏟아냈다. 제목은 ‘곽도원, 미연아 사랑한다 대박’ ‘곽도원, 여자친구 실명 공개’ ‘곽도원, 미연아 사랑해 누구?’ 등으로 바뀌었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두 스포츠신문과 두 온라인신문도 같은 기사를 5건씩 전송했다.
미란다 커의 경우는 더 심했다. 지난달 2일 미란다 커 관련기사는 ○○일보 33건, ○○일보 31건 등 소위 메이저 신문들이 어뷰징을 주도했고 4개 스포츠신문이 각각 33건, 27건, 22건, 19건씩을 남발했다. 두 종합지와 두 경제지도 각각 13∼14건씩을 반복 전송했다. 이날 하루 26개 언론사가 포털사이트에 보낸 미란다 커 기사는 258건이었다. 지금도 언론사들은 매일 치어리더들의 노출 사진, 예능프로그램의 에피소드 등 같은 내용의 기사를 적게는 4∼5건, 많게는 수십건씩 어뷰징하고 있다.
◇어뷰징은 결국 독자 피해로 이어져=어뷰징은 언론의 신뢰도 및 기사의 공적기능에 대한 기대감을 하락시킨다. 보다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기사를 찾아야 할 기자들이 같은 기사를 반복 전송하는 일에 매달리는 등 저널리즘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언론 환경도 훼손하고 있다. 이는 언론사가 보다 정치·사회적 가치가 높은 정보를 생산할 의욕을 하락시키는 결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언론사마다 같은 기사를 수십건씩 보내 포털사이트에 수백건의 무의미한 기사가 쌓이면 독자가 정말 알고 싶은 정보,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일부 언론사는 최소한의 급여를 받는 인턴이나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고용해 어뷰징 업무를 맡기기도 한다.
결국 포털과 언론사들도 어뷰징의 폐해를 인식하고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 나섰지만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는 어뷰징 문제가 불거지자 2007년 3월 각 언론사에 어뷰징 금지를 골자로 하는 가이드라인을 공지했다. 사내에 모니터링 전담팀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사들은 안하무인격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뷰징이 언론사들의 방문자 수 증가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트래픽 분석업체인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아웃링크 이전까지 주간 순방문자 수가 40만여명 수준이었던 A언론사는 어뷰징을 시도한 2007년 1월 첫 주에 11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3월에는 이같이 어뷰징이 심한 군소매체 15개사에 대해 계약 위반을 이유로 퇴출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뉴스스탠드 도입 이후 종합일간지와 경제지 등 기존 언론들이 주도하면서 더 심해진 어뷰징 매체들에 대해 구두경고만 하고 있을 뿐 퇴출 같은 물리적 조치는 주저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어뷰징이 심한 언론사들에는 개별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면서도 어뷰징의 기준이 애매하다는 등의 이유로 제재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가 지난 23일 발표한 뉴스스탠드 개편안에서도 어뷰징 대책은 빠져 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개편의 핵심은 보다 편리한 뉴스 접근을 원하는 이용자들의 요구 충족이지 어뷰징 같은 폐해 근절이 아니다”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황근 선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네이버에서 확실한 기준을 만들어 언론사들에 명확하게 제시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퇴출시키는 것이 현실적 방법”이라며 “그 기준을 언론사의 영향력에 상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