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송어 한국 정착기] 미국물 먹다 귀화 50년… 이젠 강원 명물 됐드래요
입력 2014-01-25 01:31
피골이 상접했던 시기 ‘양질의 단백질 공급’이라는 사명을 띠고 알에서 깨어났다. 캘리포니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도착했지만 강원도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1만개 알 중 깨어난 형제는 고작 넷. 새로운 공간에서 생존에 실패했지만 북미산 ‘무지개송어’가 국내에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내수면 대표 양식어종으로 자리 잡은 ‘무지개송어’가 내년이면 국내 정착 50년을 맞는다. 지난 반세기 동안 롤러코스터를 타듯 굴곡이 많았던 송어가 지금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무지개송어, 한국에 뿌리내리다=횟집과 겨울축제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무지개송어의 고향은 강원도 평창이다. 무지개송어(Rainbow trout)는 흔히 ‘송어’라 부른다. 하지만 ‘송어’는 강과 바다를 오가는 시마연어(바다송어)를 부르는 말로 무지개송어와는 같은 연어 과(科)에 속하지만 전혀 다른 어종이다. 또 송어가 바다에 내려가지 않고 강에 남아서 성숙한 것이 산천어다.
국내 송어양식을 처음 시도하고 정착시킨 박경원(94) 전 강원도지사는 “1960년대는 국민들의 식생활이 제일 문제였고 배가 고프던 시기였다”면서 “이러한 이유에서 강원도의 맑은 물을 이용해 내수면 개발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원도의 차가운 물에 적합한 어종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는 학계의 도움을 받아 북미가 원산지인 ‘송어’가 도내 환경에 제격인 것을 알게 됐다.
1965년 1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 국립양어장의 무지개송어 알 1만개가 미군 항공기를 타고 국내에 입성, 화천 간동면 도립 시험양어장으로 옮겨졌다. 대한민국 송어 양식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기술부족, 서식환경 부적합 등으로 인해 단 4마리만이 살아남았다. 첫걸음마가 실패한 셈이다. 이후 1967년 도립양어장이 송어 생육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현재의 평창송어양식장 터로 옮겨진다. 이때부터 발안란은 일본 북해도에서 들여왔다. 돼지 간, 계란노른자뿐 아니라 개구리와 번데기를 갈아 사료로 만들어 송어 먹이로 공급했다. 양산된 사료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전 지사는 “양식 기술이 정착할 때까지 고초를 겪었지만 양식에 성공한 뒤에는 그 누구보다 기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성기, 폭발적인 인기를 얻다=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송어는 대중에게 인기가 없었지만 1980년대 중반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횟집 사장들이 양식장에 미리 선금을 맡겨놓고 공급받을 정도였다. 차재명(48) 평창 내수면어업계장은 “80년대 중반에는 귀한 고기라는 인식이 있어서 돈이 있는 사람들만 먹을 수 있었다”면서 “당시 바다고기가 ㎏당 4000원 정도였는데 송어는 7000∼8000원에 팔렸다”고 말했다.
지금은 평창 지역 양식장이 14곳이지만 당시만 해도 양식장이 30곳이 넘을 정도로 양식업이 성행했다. 평창은 송어가 좋아하는 낮은 수온과 수질, 수량 등 까다로운 서식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용천수의 양이 많기 때문에 연중 온도가 12도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평창에 송어양식장이 발달한 이유다. 1980년대 말 송어 양식장은 전국 각지에 늘어나고 소양강·대청·충주댐 등지에 가두리양식이 성행했다.
◇침체기, 과잉 생산에 발목 잡히다=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양식장에서 송어가 과잉 생산돼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1991년 ‘에어로모나스균’ 파동과 2005년 ‘말라카이트 그린’ 파동이 발생해 국내 내수면 양식의 근간을 흔들었다. 당시 국립보건연구원은 낙동강 수계 양식 송어와 향어에 폐렴, 패혈증을 일으키는 ‘에어로모나스균’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전국 양식장과 회전문식당이 문을 닫을 만큼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이어 2005년 10월 양식장의 송어에서 물곰팡이를 억제하는 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되면서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차 계장은 “말라카이트 그린 파동 때는 정말 막막했고 그 여파가 3년 정도 유지됐다. 사료도 못 줄 만큼 타격이 심했다”고 말했다.
◇제2전성기, 축제로 화려하게 부활하다=위기에 몰렸던 송어가 단순한 먹거리에서 짜릿한 손맛과 즐거움을 주는 겨울축제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아이템이 됐다.
말라카이트 그린 파동 이후 침체된 지역 경제와 송어 양식 업계를 활성화시킬 방안을 찾던 중 평창 지역 주민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 바로 평창 송어축제다. 2008년 첫 문을 연 송어축제가 큰 인기를 끌면서 타 지역에서 축제를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그 결과 지금은 송어를 이용한 축제가 전국 각지서 10여 곳에 이른다. 도내 78곳의 송어 양식장 출하량 역시 2009년 1521t에서 지난해에 1663t으로 4년 만에 142t 늘었다. 판매액은 125억원에 달한다. 김재용(55) 평창송어양식장 대표는 “축제가 활성화되다 보니 사계절 중 겨울철이 가장 판매량이 많다”며 “판로가 확보돼 안심하고 고기를 기를 수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단백질 공급’이라는 사명을 이룬 송어가 지금은 전 국민에게 짜릿한 재미를, 양식어업인에게는 출하의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평창=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