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배추가 붉은색이네] 이관호 교수의 도전과 결실

입력 2014-01-25 02:33 수정 2014-01-25 14:32

이관호 한국농수산대학 교수는 “세상에 없던 신종을 만들어 노벨상을 타는 게 꿈이었다”며 육종 연구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털어놨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중·고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돼 쓰쿠바대학교에서 6년간 육종학을 연구했다. 6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양배추와 배추를 교잡시키면서 ‘리틀 슈퍼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부지런함과 끈기를 바탕으로 양배추와 배추 사이에서 신품종인 쌈추를 얻어냈다. 당초 그의 목표대로 전혀 새로운 신종이 탄생한 것이다. 그의 연구실 냉장고에는 해마다 연구용 비닐하우스에서 거둬들인 각종 신종 채소의 씨앗이 가득하다. 책가방 크기의 플라스틱 소쿠리 한 개에 담긴 씨앗이 그의 1년 치 농사이자 연구의 결실이다. 이런 소쿠리가 20여개나 쌓여 있다. 이 연구 성과로 그는 ‘제 2의 우장춘’이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게 됐다. 그는 “우장춘 박사는 배추과(科) 작물을 연구해 ‘종의 합성’이라는 논문으로 노벨상을 타고도 남을 업적을 쌓았지만 수상하지 못했다”며 “내가 그 한을 풀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그중 판매용으로 포장된 쌈추 씨앗을 꺼내들었다. 그는 “한때는 불티나게 팔렸는데 지금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며 한숨을 쉬었다. 2000년 그가 쌈추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대형 종묘회사가 대량생산과 판매를 돕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그는 흔쾌히 승낙을 했고 당시 갖고 있던 연구용 종자를 내줬다. 종자를 판매하려면 수요를 감당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재고를 갖고 있었어야 하지만 당시 종묘회사는 판매에만 급급했다고 한다.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이 교수의 사무실로 ‘씨앗 좀 구할 수 없겠느냐’는 전국 채소 농가의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특허 등록과 상표 사용권 등을 둘러싸고 종묘회사와 갈등이 생기면서 시판은 중단됐다.

현재 시장에서 ‘쌈추’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물량은 배추의 어린잎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양배추와 배추 사이에서 태어난 신품종인 쌈추와는 맛부터 다르다고 한다. 농대 교재 중 채소 관련 교과서에는 ‘쌈추는 우리나라 배추과 채소육종에서 나온 최고의 걸작 쌈채소’라고 평가할 정도다. 이 교수는 “월급을 고스란히 털어가며 일궈낸 신품종을 보면 뿌듯하지만 국가가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국민 식생활의 질과 농가 소득이 한층 높아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화성=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