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유영대] 5만원과 양심

입력 2014-01-25 01:35


며칠 전 빵을 사러 집을 나섰을 때의 일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햇볕을 쐬니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날씨였다. 모두들 무슨 일인지 총총걸음으로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빵집에 거의 다다랐다. 갑자기 누군가 내게 다가오더니 만원짜리 몇 장을 불쑥 내밀었다. 너무 눈 앞 가까이서 돈을 꺼낸지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웬 돈이에요?” 그 남자는 대뜸 “우선 5만원부터 받으세요”라고 말했다. 돈 봉투를 내민 남자는 50대 중반쯤 돼 보였다. 그의 손에는 돈 봉투가 몇 개 더 들려 있었다. 돈 봉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이 5만원은 무슨 돈일까. 왜 돈을 거저 주겠다는 것일까. 재빨리 머리를 굴려봤지만 짚이는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남자는 “○○일보를 보시면 이 돈을 덤으로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황당했다. 거리에서 돈을 거저 주는 사람을 처음 본지라 당황했지만, 신문을 돈 받고 거저 보라는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문이 거리에서 거저 주는 5만원짜리로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까지 ○○일보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저씨, 미안하지만 신문 안 볼랍니다.” 이렇게 말하며 나는 그와는 반대쪽으로 몸을 틀었다. 하지만 그는 10여m나 쫓아왔다. 그는 집요하게 신문구독을 또 권유했다. 어떻게 따돌릴까. 잠시 뒤 내가 “집에서 보는 신문이 있어 안 됩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5만원을 더 얹어 주겠다고 말했다.

‘아니 5만원이나 더…. 그러면 모두 10만원을 주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주고도 지국 운영이 되나 보네.’ 이런저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우선 자리부터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꿎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잠시 후 그는 나름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전거나 상품권을 주고 스포츠신문도 하나 끼워 주겠다는 것이었다.

헉! 자전거까지….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5만원에, 10만원에, 자전거에…. 도대체 신문 한 부 봐주면 어떤 천국까지 데려가 주겠다는 것인가. ‘아, 이게 그 유명한 ‘자전거 일보’라는 거구나. 자전거 일보는 거리를 그렇게 달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나는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신문기자가 아닌가. 이건 분명 불법적인 상행위일 뿐 아니라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분명해졌다. 다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뭔가 노리는 것이 있을 터였다. 내게서 뭔가를 직접 노리지는 않더라도 분명히 어떤 비리의 사슬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내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더니 팔을 더욱 꽉 붙잡았다. 그에게 창피함이란 없었다. 오직 신문을 더 팔아야겠다는 의욕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서 무슨 신문 보세요? ○○일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보는 신문이고 물론 ‘1등 신문’이에요. 읽을거리도 많고요. 지금 보시는 신문보다 이 신문이 더 좋아 보이지 않나요. 또 이렇게 돈과 경품, 스포츠신문까지 얹어 주니 얼마나 좋은 조건인가요. 1년 보고 다시 바꾸셔도 됩니다.”

1등 신문? 5만원에, 10만원에, 자전거에, 스포츠신문도 끼어주고, 그것도 1년만 보면 된다고? 대한민국의 1등 신문이 길거리에서 이렇게 유치찬란한 호객행위를 한다는 말인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이 아저씨의 판촉행위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니 신경이 곤두섰다. 아저씨를 뿌리치려니 추운 날씨임에도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이 아저씨를 신고해야 할까? 신고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을까. 신고하면 포상금도 주는 것 같던데. 아니 관공서는 뭐하는 거야.’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신고하지 않기로 했다. 이 아저씨가 먹고살기 위해 그러는구나 생각하니,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등이든 뭐든, 우리 사회는 이렇게 천박하게 돌아가는 걸까?

집으로 돌아오면서 신문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어떤 신문을 만들고 어떤 기자로 살아야 할까. 꼭 명심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초년기자 시절이 떠올랐다. 선배들은 나를 불러 일장 훈계를 하곤 했다. 무슨 잘못을 그렇게나 했는지…. 매번 같은 말이었다.

“언론은 신뢰가 생명이야. 절대 거짓 기사를 써서는 안돼. 좀 더 밀착취재를 해봐….”

사실 그땐 선배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내가 잘못해 하는 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선배들의 쓴소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그거다. 정직해야 한다. 비록 특종 기자는 아닐지라도, 공정하지 않거나 양심에 거리낌 있는 기사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그런 양심으로 만드는 신문을 거리에서 저렇게 비굴하게 팔아서도 안 된다고. 1등, 2등은 그 다음의 일이다. 찬바람 속에서 다시금 다짐해 본다.

유영대 종교부 차장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