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반구대 암각화 해법 없나

입력 2014-01-25 01:34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해마다 자맥질을 반복하고 있는 이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가변형 투명 물막이 시설(카이네틱댐) 설치에 제동이 걸렸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16일 울산시가 제안한 이 시설에 대해 심의 보류를 결정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요구했다. “한시적인 시설물이어야 하므로 한시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제출할 것. 이에 대한 안전성 및 시공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사전 검증 계획을 제출할 것.” 카이네틱댐이 영구시설이 아니라는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자 울산시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울산시는 “총리실, 문화재청, 울산시 등 3개 기관이 합의를 거쳐 마련한 사항으로 항구 대책이 수립될 때까지 한시적인 대안”이라며 “물막이댐 설치비 등 예산까지 확보했는데 심의가 보류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울산시는 설계보완 후 다시 심의를 신청하겠다는 입장이다. 카이네틱댐 설계자인 함인선 선진엔지니어링 대표는 “문화재위원회가 암각화와 비슷한 조건에서 모형 테스트를 실시해 안전성 등을 확보하자는 것인 만큼 이에 따를 방침”이라고 밝혔다.

울산시가 제출한 카이네틱댐 규모는 길이 55m, 폭 16∼20m, 높이 16m이며, 올해 10월까지 설치를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울산시는 당초 길이 40m 물막이 시설을 계획했으나 최근 실시한 암각화 주변 발굴조사 결과 공룡 발자국 화석이 다수 발견됨에 따라 규모를 확대했다.

모형을 제작해 실험하는 데는 2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울산시가 실험이 끝나 보완사항을 추가해 다시 심의를 신청하면 문화재위는 건축분과와 천연기념물분과 등 관련 분과 합동회의를 열어 재심키로 했다. 이 경우 최소 서너 달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이네틱댐 설치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암각화가 노출돼 있는 것보다 물이 들었다 빠졌다 하면 훼손 멸실 우려가 훨씬 커지기 때문에 매우 정밀한 공법이 요구된다. 건설 장비를 암벽에 설치·해체하는 과정에서 벽화가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또 개념도를 통해 제시된 카이네틱댐은 암각화를 우리 안에 가두고 옥죄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문화재위 통과가 쉽지는 않을 것임을 예고케 한다. 문화재 경관을 해치는 이 시설이 한시적이 되기 위해서는 울산의 급수원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 문제는 더 어렵다.

인구 120만인 울산은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사연댐과 대곡댐에 식수와 용수를 의존하지만 수자원공사에 막대한 물값을 내고 있다. 사연댐의 저수율이 낮아지게 되면 물 공급용 댐을 하나 더 만들거나 다른 지역의 물을 끌어와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울산의 식수원이 해결되지 않고는 카이네틱댐의 철거 시점을 장담할 수 없다. 문화유산계 일각에서는 이 시설을 무리하게 추진할 바에는 울산시가 제안했다가 문화재위에서 거부당한 생태제방 축조를 통한 보존방식을 주변 경관에 맞게 변경해 재추진하는 것이 낫다는 말도 나온다.

더불어 문화유산 사정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이런 물막이 시설을 무리하게 추진한 총리실을 비롯한 정부 당국,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반구대를 살려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내세운 문화재청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정녕 대안은 없는 것인가. 사연댐이 1965년 축조된 후 48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반구대 암각화가 한 번도 물에 잠기지 않았다. 가뭄의 영향도 있었지만 카이네틱댐 설치 문제로 사연댐 수위조절을 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