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의지 훈련법

입력 2014-01-25 01:36

사막의 교부들은 인간 안에 두 가지 의지, 즉 위의 것을 찾는 속사람의 높은 의지와 땅의 것을 찾는 저급한 감각적인 의지가 있다고 보았다(골 3:1∼2). 이는 사도 바울의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2∼23)라는 말씀에 근거를 두었다. 우리 각자 안에 있는 두 의지는 서로의 뜻대로 하려고 싸운다. 영적 전투의 준비가 되지 않은 대부분 싸움에서는 낮은 의지가 높은 의지를, 죄의 법이 마음의 법을 사로잡고 이긴다.

독방으로 돌아가라

사막의 영성훈련 목표는 이 자연적 상태를 뒤엎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높은 의지가 감각적 의지를 사로잡아 순종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럴 때 영혼이 몸을 지배했던 낙원에서의 창조질서가 회복된다고 보았다. 그 시대 수도사들은 어떻게 이 질서를 잡았는지 다음 일화를 보자.

악한 생각에 시달리던 한 수도사가 어느 원로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그런데 뜻밖에 원로는 “나 자신은 욕정과 전혀 싸워본 적이 없었다네”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는 이 말에 수도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묻자 “수도사가 된 이래 나는 빵을 만족하게 먹어본 적이 없었고 물을 만족하게 마셔본 적이 없었고, 잠을 만족하게 자본 적이 없었다네. 이러한 일들에 대한 열망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으므로 나는 자네가 말한 것과 같은 욕정을 느낄 틈이 없었다네”라고 대답했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과 수면욕마저 다스린 결과였다. 그러나 당시 수도사들 모두가 쉽게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수도사들 가운데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고 아예 세상으로 돌아간 자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시작한 일을 지속하지 못하고 침체에 빠진 수도사들은 어떻게 수렁에서 벗어났을까. 다음 일화를 보자. 한 수도사가 스승 아르세니우스를 찾아가 고백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마음이 흐트러지고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온갖 생각이 저를 괴롭힙니다. 금식도 할 수 없고 노동도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마을에 가서 병자들을 돕는 사랑이나 베푸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자 스승은 “가서 실컷 먹고 마음대로 자려무나. 단, 독방을 떠나지는 말게. 반드시 독방에 머무는 것이 수도사를 온전케 만든다는 것을 자네가 깨달아야 하네”라고 말했다. 제자는 돌아가 그대로 행했는데 사흘이 지나자 방에 있는 것이 갑갑하고 넌더리가 나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방 안에 둔 종려나무 가지를 쪼개고 엮어서 방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허기를 느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 나뭇가지 몇 개가 있으니 이것들을 마저 엮고 난 후에 식사를 하자.” 방석을 만들고 나서 음식을 먹을까 하다가 또 혼자 중얼거렸다. “독서를 약간 한 후에 먹자.” 책을 읽고 나서는 다시 다짐을 했다. “시편 몇 편을 암송한 후에 평안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자.” 날마다 이렇게 조금씩 전진하여 수도생활에 정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를 괴롭혔던 생각들에 용감히 대처하고 결국엔 완전히 극복하게 되었다.

작은 목표부터 정하자

기록에 따르면 사막의 스승들은 수도생활에 문제가 생긴 제자들에게 비슷한 처방을 내렸다. 독방으로 돌아가 마음대로 몇 날을 살아보라는 것이다. 자기 독방을 지키는 사람은 때때로 마음이 흐트러지더라도 끝내는 마음을 모으기 마련이라고 확신했다.

또 하나의 일화를 보자. 한 청년 수도사가 원로를 찾아가 근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저는 수도사로 이룬 게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졸기만 합니다. 마음에는 악한 생각으로 괴로움이 넘칩니다. 무엇을 해도 마음이 흔들리기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원로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독방으로 돌아가게나. 그리고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행하게. 물론 작은 일부터 시작하도록 해. 안토니 같은 분은 사막에서도 큰일을 행하셨지. 하나님을 묵상하며 독방을 지키는 사람은 곧은 마음을 지킬 수 있고 나아가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지. 안토니가 그러했듯이.”

큰 일, 큰 목표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막 교부들은 포기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하다보면 목표한 지점에 도달한다고 가르쳤다. 제자들이 여러 가지 유혹들로 엉켜 낙심할 때라도 모두와 싸우지 말고 오직 한 가지와 싸우도록, 그러다보면 모든 유혹들은 사라진다고 조언했다.

우리는 땅의 것을 찾는 저급한 감각적 의지 때문에 싸움에서 지더라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참고 이겨내기만 하면 변형된 새 인격이 우리 안에 자리잡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선 작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정하고 한 가지 전투에서 싸워 이겨보자. 성자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가.

김진하 교수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