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돌보심] 교회는 지금, 피난처인가

입력 2014-01-25 01:33

2014년 한국 교회에 보내는 세가지 시선

(3) 피난처가 되는 교회… 돌보심


베트남 여성 A씨(33)는 2008년 한국에 시집을 왔다. 한국을 좋아해 결혼하기 이전부터 한국말을 배웠다. 남편과도 사이가 좋아 딸도 낳았다. 그녀는 한류의 근원지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남편의 변화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일정한 직업이 없던 남편은 감정 변화가 심해 걸핏하면 A씨를 때렸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손찌검하는 날도 많았다. A씨는 결국 폭력을 견딜 수 없어 2년 전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그녀는 지난해 다문화가정 여성을 보호하는 쉼터 ‘유니게의 집’에 입소했다.

유니게의 집엔 현재 중국과 베트남 출신 등 이혼 이주여성 6명과 4명의 자녀들이 생활하고 있다. A씨는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개소한 이곳은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의 쉼터다. 최대 1∼2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유니게의 집은 한국교회 차원에서는 최초의 이주여성을 위한 ‘피난처’이기도 하다.

성종숙 소장은 “유니게의 집은 한국교회의 관심과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입소자 대부분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등 신앙적인 위안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게는 사도 바울의 제자였던 디모데의 어머니로 그리스인 남편을 둔, 성경 속 다문화가정의 여성이다.

교회와 기독교 기관들이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정서적 피난처가 되고 있다. 피난처 역할은 구한말 빛을 발했다. 1906년 당시 선교사들이 출간한 ‘코리아미션월드’에서 미국의 샤프(C. E. Sharp) 선교사는 당시 한국교회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이 기독교로 가는 동기는 보호에 대한 욕구다. 시기가 불안정한 연유로 도움을 얻기 위해 상호 결속했다.”

서울신대 박명수(교회사) 교수는 “구한말 풍전등화 같은 시국 상황에서 사람들이 마음 둘 곳은 교회밖에 없었다”며 “교회는 민족 문제 해결의 방편이자 부패한 관리의 횡포를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선교사들이 있던 교회는 백성을 보호했고 탐관오리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김구, 이동휘 선생은 피난처인 교회를 찾아오면서 기독교인이 됐다.

찬송가 ‘피난처 있으니’(70장)는 당시 이런 정황에서 지어졌다. 작자미상의 이 곡은 구한말 누군가 시편 46편 1∼3절에 영감을 받아 작사했다. 이 찬송은 최초의 장로교·감리교 합동 찬송가였던 ‘찬숑가’에 1908년 채택됐다. 교회는 일본인들의 핍박이 심할수록 이 찬송을 열심히 불렀다. 일제는 이 찬송을 아예 부르지 못하도록 먹칠했고, 그래도 외워서 부르는 사람은 잡아다 온갖 악형을 가했다고 전해진다.

교회의 돌봄 사역은 해방 후 6·25 전쟁을 거치면서 전문 구호단체들을 통해 확산됐다. 이들은 응급구호를 비롯해 고아원을 운영하고 해외 입양, 전쟁 미망인 원조, 주택 복구, 보건 의료, 교육, 지역사회 개발 등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대사회 참여와 섬김, 봉사의 기초를 닦았다. 다양한 구호와 위로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달했다. 가난한 자와 고아, 과부와 나그네, 외국인과 이주민을 향한 성경의 가르침을 따랐던 것이다.

교회의 피난처 역할은 정치적 이유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도 보호막이 됐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기독교회관과 명동향린교회 등은 쫓기던 이들의 은신처이자 기댈 곳 없는 이들의 시위 장소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의 경우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세워주고 돌보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엔 노숙인과 탈북자, 이주 근로자와 독거노인 등의 신(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돌봄 사역도 활발하다. 각 단체는 이들의 필요를 채워줄 뿐 아니라 사회 적응을 위한 직업교육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기독교계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자살이나 이혼 등 사회 문제에도 뛰어들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깨진 가정을 회복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피난처(refuge)’ 또는 ‘피하다(take refuge)’란 말은 성경에 89번 등장한다. 시편은 45번이나 언급되는데 사울에 쫓기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던 다윗의 고백으로 점철돼 있다. 다윗은 주께 피하는 것이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시 31:19)이며 복(시 34:8)이라고 단언한다.

모세오경에 등장하는 ‘도피성(Cities of refuge)’은 부지중에 살인한 자의 생명을 존중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신학자들은 도피성 제도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만인을 도우려는 하나님의 관심이라고 해석한다.

이런 가운데 피난처로서의 교회 위상은 80년대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독교 관련 시민단체나 NGO 등이 생기면서 사회 문제와 약자들을 전문적으로 보살펴 왔지만 교회의 대사회적 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최근 신뢰도 하락과도 관계가 있다.

NCCK 정의평화국 김창현 목사는 “교회는 언제나 약자들이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짊어지는 본연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차별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