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월급봉투는 안녕하십니까 ①] 10년 전 가계부 열어보니… 교육비·통신요금 배 이상 껑충↑

입력 2014-01-24 01:34 수정 2014-01-24 10:24


①열심히 일했다. 나라와 회사는 부자됐다. 나는?

우리 경제는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 금융위기를 견뎌내며 볼륨을 키웠다. 정부는 그간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산다”며 수출 대기업 위주 정책을 폈다. 그러나 기대했던 낙수효과(落水效果)는 없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정부·기업·가계 등 3대 경제 주체의 한 축인 가계로의 부의 이전이 이뤄지지 않았다. 전세가격, 통신비 등 생계비는 급등했지만 근로자 월급은 제자리걸음이다. 정부는 세수 부족이 걱정될 때마다 월급쟁이들의 ‘유리 지갑’을 먼저 털었다. 국민일보는 신음하고 있는 가계의 현실과 대안을 모색하는 ‘당신의 월급봉투는 안녕하십니까’ 시리즈를 3차례 연재한다.

나는 대구에 사는 중산층이다. 남편 연소득은 6000만원이고 대출을 끼고 있지만 32평 아파트도 소유하고 있다. 11년째 타고 있지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도 있다. 친구들은 나 정도면 그래도 살만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무늬만 중산층’이다. 결혼하고 나서 누구보다 알뜰하게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지금은 저축 한푼 못 하고 늘 쪼들린다.

10년 전 2003년 가계부를 들여다봤다. 천신만고 끝에 내집 장만의 꿈을 이뤘던 시절. 그때는 10년 안에 대출을 갚고 노후 준비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10년 후엔 지금보다 좀 더 여유롭게 살겠다던 그때의 다짐은 어디서부터 틀어진 걸까.

◇교육비·보험료·통신요금 배 이상 뛰어=교육비 부담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애들이 초등학생이던 10년 전에는 피아노학원과 속셈학원비로 매달 30만원을 썼다. 하지만 지난해엔 매달 수학 과외비로만 80만원이 나갔다. 고2가 되는 막내도 마음 같아선 더 가르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큰딸이 서울로 가면 방값과 생활비로만 최소 100만원은 보내줘야 한다.

10년 전 가계부엔 보험료가 40만원으로 적혀 있다. 지금 내는 보험료 80만원의 절반이다. 고등학생인 두 딸의 보험료는 기한 갱신과 변액보험 구조로 크게 늘었다. 전화비도 가족 모두 스마트폰을 쓰면서 매달 30만원은 꼬박꼬박 빠진다. 10년 전보다 배로 뛰었다.

식비는 최대한 줄인다고 줄였다. 우리 가족 먹는 게 특별한 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때보다 50%가량 늘어 매달 53만원 정도를 지출하고 있다. 가계부에 붙어 있는 마트 영수증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줄일 만한 아이템이 보이지 않는다. 연말에 놀이동산 한 번 갔다오니 전체 외식비가 26만원으로 뛴다. 고생하는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겨울에 입을 점퍼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오늘 마트에서 오랜만에 갈치를 사려고 했다가 너무 비싸 포기했다.

◇대출 상환은 그대로, 노후 대비 제대로 못해=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출 상환금은 50만원 그대로다. 애들이 크면서 아파트를 24평에서 32평짜리로 옮긴 게 4년 전이다. 원금을 조금씩 갚고는 있지만 언제 다 갚을지 한숨이 나온다. 팍팍한 살림에는 교통비도 한몫한다. 한국석유공사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ℓ당 자동차용 경유 가격이 지난해 평균 1730원이란다. 남편이 통근버스를 타는데도 유지비가 좀처럼 줄지 않는다. 2003년 ℓ당 경유 가격은 평균 772원이었다.

노후 대비는? 남의 얘기다. 저축도 10년 전에는 월 50만원씩 정기적금을 넣었지만 최근 만기가 찼고, 추가 적금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느덧 쉰을 바라보는 나이다. 남편과의 노후생활을 위해 모은 돈은 사실상 없다. 노후생활용으로 생각했던 2000만원 만기 적금액은 두 딸아이 대학 생활비로 충당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10년이 더 걱정이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