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월급봉투는 안녕하십니까 ①] 가난한 家計-부자 企業 고착화
입력 2014-01-24 01:36
10년 전 가계부를 펼쳐든 주부 이모(48)씨는 ‘남편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자동차 부품업체 차장인 남편의 월급은 500만원. 10년 전보다 딱 100만원(25%) 늘었다. 그러나 10년 전과 지금 가계부를 비교해 보니 통신비 등 생활비는 배 이상 늘었다. 10년 전에는 매달 50만원 저축을 했지만 지금은 저축은커녕 빚 안 내고 버티기에 급급하다. 4인 가족에 연소득 6000만원. 이씨는 자신의 가정이 정부 통계 분류상 중산층의 꼭대기점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가계가 쪼그라들고 있다.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와 1%대 저물가 기조에서 정부는 경기가 점차 회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가계경제는 악화일로다. 1000조원 규모의 가계부채에 짓눌리고 사교육비 등 생계비 부담은 줄지 않고 있다.
갈수록 가난해지는 가계를 만들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기업들의 분배 실패다.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부자 기업-가난한 가계’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계는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가 가져가는 몫은 2000년 69%였지만 2012년 62%로 떨어졌다. 반면 기업 비중은 17%에서 23%로 급증했다. 2000년대 이후 가계소득 비중 하락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헝가리, 폴란드에 이어 세 번째 빠른 추세다.
가계와 기업의 소득 증가율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23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975∼97년 우리나라 GNI는 연평균 8.9% 증가했다. 이 기간 중 가계소득과 기업소득은 각각 연평균 8.1%, 8.2% 늘었다. 경제 성장의 과실을 가계와 기업이 골고루 나눠먹은 셈이다.
그러나 2000∼2011년 가계소득 증가율이 연평균 1% 줄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소득은 이보다 훨씬 더 줄어든다. 반면 기업소득은 3.7% 증가했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경제의 가계와 기업 간 성장 불균형은 이례적으로 심하다”며 “기업소득 증가의 주 원인은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 능력보다는 가계 몫을 돌려주지 않은 데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2000년 이후 가계부채 급증은 가계의 과소비보다는 이러한 가계소득 부진에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가계와 기업 간 소득 불균형에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수출 대기업 위주 성장 정책을 고수했다. 그 결과 올해 초 정부 스스로 삼성과 현대차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스스로 분석해야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반면 일부 수출 대기업의 호황에 가려진 장기적인 가계소득 부진은 ‘소비 위축→내수 부진→기업 매출 감소→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악순환을 고착시켰다.
세종=이성규 백상진 기자, 선정수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