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통상임금 지침] 통상임금 요건 더 강화… 급여 인상 가능성 극히 낮다
입력 2014-01-24 07:22 수정 2014-01-24 10:34
고용노동부가 23일 발표한 통상임금 노사관계 지도지침은 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예상되는 산업현장의 갈등을 줄여보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1988년 이후 정부가 고수해왔던 통상임금 산정지침 예규가 상당부분 무효화됐기 때문에 발생하는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핵심 쟁점이었던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각종 수당의 소급분을 청구할 수 있는 요건에 대해 법원으로 다시 공을 떠넘기는 등 명확한 기준을 담지 않아 산업 현장의 혼란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 월급 늘어나나=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도의 소송을 하지 않는 한 대법원 판결과 노동부 지침에 따라 개별 근로자의 급여가 늘어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노동부 지침에 따르면 정기상여금, 기술수당, 근속수당, 부양가족 수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가족수당, 성과급 중 최하위 그룹에게도 보장되는 최소한도 금액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수당을 결정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통상임금이 증가하면 연장근로수당도 당연히 늘어난다. 임금체계가 바뀌지 않는 것을 가정하면 평일 2시간, 주말 8시간씩 연장근무를 할 경우 매월 받는 수당의 30% 정도가 오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동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개별 노사가 새로 임금협약을 맺을 때까지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기존 협약이 유효하고 소급 청구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툼의 여지는 있지만 노동부 해석에 따르면 다음 임금 협상까지는 모든 개별 기업의 현재의 급여 수준이 유지된다. 대법원이 판결 근거로 제시한 신의성실의 원칙이란 계약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방식으로 권리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대법원은 노사가 이미 암묵적·관행적으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합의를 갖고 임금 수준을 결정해 왔기 때문에 통상임금 산정 기준 확대에 따라 발생하는 임금 인상분을 소급해서 청구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놨다.
◇정말 못 받나=다만 대법원은 소급분 청구로 인해 기업이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에 처하거나 존립이 위태롭게 될 경우가 아니라면 청구가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과 노동부는 이런 상황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추가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게다가 노동부는 정기상여금이라도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재직자에게만 지급된다면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퇴직자 또는 퇴직예정자에게도 근무한 기간에 비례해 지급해야만 통상임금 요건을 충족시킨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조사 결과, 국내 기업 중 정기상여금을 퇴직자에게도 지급하는 경우는 30%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 기준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을 받는 근로자라도 통상임금이 늘어나는 경우는 셋 중에 한 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기상여금 등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에 편입된 급여 항목을 받지 않았던 근로자들은 아예 해당사항이 없다.
기존 임금체계를 유지하면 통상임금이 확대되는 기업들은 추가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돌아오는 임금협약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각종 급여 항목과 지급 기준을 변경하면 얼마든지 통상임금 판단기준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개별 노사관계에서 사측이 우위를 점하고 있거나 노조가 없는 영세 사업장의 경우에는 힘의 논리가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통상임금 산정 기준을 명확히 법에 반영하는 것이지만 극도로 경색된 노·정 관계 탓에 노사정 대타협은 기약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Key Word-재직자 요건
통상임금은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금품만 포함된다. 특정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는 임금은 초과근로를 제공하는 시점에서 판단했을 때 근로자가 재직하고 있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고정성이 없다는 게 대법원 판결 요지다. 즉 정기상여금이라도 특정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고 퇴직자에게 소급해 지급하지 않으면 통상임금으로 산입되지 않는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해석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