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이영미] 정부가 설득에 실패한 이유

입력 2014-01-24 01:32


“원격의료를 허용합시다.” 정부가 말했다. “절대 불가입니다.” 동네 개원의사들이 파업하겠다고 나섰다. “병원에 회사를 세워 돈 벌 자유를 줍시다.” 정부가 또 말했다. 이번엔 시민단체가 화들짝 놀랐다. “안 될 말입니다.”

이게 예상 못했던 상황이냐, 하면 물론 아니다. 22일 들른 수도권 한 대학병원은 명절 전 대형마트 정육코너보다 붐볐다. 오가는 길에 본 아파트 상가에는 치과, 소아과, 피부과 간판이 즐비했는데 정작 환자들은 죄다 대학병원 로비에 앉아 있었다. 이게 특이한 풍경일까. 그럴 리가.

한국 의료시장에서 대학병원과 동네의원은 같은 링 위에서 경쟁한다. 체급 구분이 없단 말이다. 원격의료란 환자가 IT기기를 활용해 먼 곳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네의원이 딱 하나 가진 비교우위, 물리적 거리가 사라진다. 심판이 슈퍼헤비급 선수에게 짱돌을 주려 한다면? 라이트플라이급이 패닉에 빠진대서 이상할 건 없다.

전국 848개 비영리 의료법인에 호텔, 스파 같은 걸 허락하자는 아이디어는 업계를 좀 안다는 이들을 불안하게 했다. 그동안 비영리 의료법인의 수익은 병원 안에 고였다. 비영리란 말의 뜻이다. 대가로 병원들은 연간 최소 수백억 원대 세제혜택을 받아 왔다. 자회사가 허용되면 환자 치료해 번 돈은 40년 만에 처음 합법적 탈출로를 확보하게 된다. 병원회계가 유리알처럼 투명하다면 문제될 건 없다. 실은 그게 복마전이다. 병원들이 재무제표로 어떤 숫자놀음을 하는지 아는 이가 없다. “관료들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정책”(정형선 연세대 교수) 같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빗발치는 반대에 정부는 지치지도 않고 “모든 게 오해”라는 말을 반복한다. ①원격의료는 동네의원이 중심이므로 의료기관 양극화는 기우이고 ②자회사 수익은 병원으로 되돌아와야 하므로 돈 빼돌리기도 없을 거란다. 안심돼야 마땅할 텐데 되레 의문이 커진다. 그 모든 우려를 알면서, 너무 잘 알아서 ‘병원급 대상 축소(원격의료)’ ‘의료기기 임대·판매 불허(자회사)’ 같은 규제책을 줄줄이 내놓으면서 보건복지부는 무슨 이유로 반대 많은 정책을 밀어붙이는가.

‘왜’라는 질문에 정부가 내놓은 답변 역시 요령부득이다. 자회사 허용의 명분은 경영난에 빠진 중소병원을 돕자는 거다. 병원이 의료수익만으로 버티지 못한다면 그 구조를 고쳐야 한다. 김윤 서울대 교수가 지적하듯, 딴 사업으로 돈 벌어 의료적자를 메우는 게 정공법일 수는 없다.

의료산업화가 목적이라면 자회사 해법은 더욱 앞뒤가 안 맞는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불리는 영상의료기기 분야 ‘빅3’는 지멘스(독일)·필립스(네덜란드)·제너럴일렉트릭(미국)이다. 치과재료로 유명한 플랜메카(핀란드), 수술방 기기 1인자 드뢰거(독일), 히타치·도시바(일본)까지 헬스케어 분야의 선두그룹 중 병원이 투자해서 키웠다는 회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헬스케어 강자로 성장하기 위해 의료법인의 자회사가 허용돼야 할 당위는 없다.

게다가 한국은 걸어서 10분이면 웬만한 진료과목 의원을 찾아낼 수 있는 나라다. 그런 곳에서 원격의료를 도입하자며 내놓은 명분이 의료접근성이다. “그렇구나” 고개 끄덕여 줄 합당한 이유라고 복지부는 정말 믿었을까. 정부로부터 ‘반대에 대한 반박’은 충분히 들었다. 이제 들려줄 얘기는 ‘왜 하려는지’ 진짜 이유이다. 그걸 말하지 않는 한 대화는 난망이다.

이영미 사회부 차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