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나를 아십니까?”

입력 2014-01-24 01:32


은은한 시나몬향의 카푸치노, 아껴두었던 책 한 권…. 일요일 저녁 나는 카페에서 모처럼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앳되어 보이는 여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인데, 그림으로 하는 심리테스트 한번 해 보실래요?” 살짝 갈등이 되었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혼자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꼭 작가 같아 보인다나. ‘아니,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알았지?’

여자는 원과 삼각형이 그려진 흰 종이를 내밀었고, 나는 지시대로 그림을 보며 연상되는 것을 그려 나갔다. 신종 미술테라피인지, 풀이도 해 준다기에 디테일까지 신경 쓰며 정성껏 그렸다. 마치고 나자, 그림에 대한 내 감정을 설명해 보라고 한다. 원은 나의 현재며 삼각형은 미래라는 그럴싸한 풀이를 맞장구까지 치며 한참을 들었다.

그런데 풀이가 다 끝났는데도 여자가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때부터 똑바로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세상에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있고, 조상의 기운이…. 아, 또 걸렸구나.

총총 여자가 사라진 뒤 멍한 머릿속으로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식어버린 카푸치노를 들이켜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가 “도를 아십니까?”를 물을 때 나는 처음 본 사람에게 “나는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있었다. 변명을 대자면, 단지 무의식에서 표현되는 나란 사람이 궁금했던 것뿐이다. 물론 그 번지수가 잘못된 건 인정해야겠지만.

살아가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허방을 짚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성정에 안 맞는 직업을 택하고, 이상한 인연과 찌질한 유혹에 말리고, 작은 선택도 주저하게 된다. ‘도를 아십니까’에 걸리는 것쯤은 애교다. 그 답 좀 구해 보려고 각종 책이며, 용하다는 집, 유명하다는 사람들을 쫓아다닌다.

나를 알고 싶다면 가장 먼저 ‘나’를 찾아가야 할진대, 온통 외부로만 눈을 돌린다. 마치 자기 품에 자식을 안고 있으면서 아이가 안 보인다고 동네방네 휘젓고 다닌 격이랄까. 고요한 시간 나와의 끊임없는 직면은 쉽지 않기에 그래서 더 필요한 순간이다.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과 답…. 당장의 생활에 치여 때로 배부른 ‘깡통철학’쯤으로 치부되지만 사실 인생을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가장 먼저 쥐고 있어야 할 열쇠라는 걸, 많은 시행착오 끝에 깨닫는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