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AN-2기
입력 2014-01-24 01:34
1970년 11월 초, 양택식 서울시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여의도광장 조성 계획을 보고했다. 양 시장은 홍익대 박병주 교수팀이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앞 광장을 벤치마킹해 녹지와 화단을 적절히 배치한 설계도를 내놓고 설명을 했다. 한참 듣고 있던 박 대통령은 몹시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다 집어치우고 그냥 깔아요. 양 시장 이마처럼 시원하게 아스팔트로 깔란 말이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여의도 한복판 약 12만평 규모의 아스팔트 광장이다. 1·21사태, 푸에블로호 납치,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등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던 때여서 유사시에 공군 비행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 생각이었다. 공사는 71년 2월 시작돼 7개월 만에 완료됐다. 이름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5·16광장으로 결정됐다.
그해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때 처음 공개된 광장은 그러나 박 대통령에게 커다란 걱정거리였다. 북한이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AN-2기에 특수전 병력을 실어 여의도에 침투시킬 것이란 첩보가 속속 접수됐기 때문이다. 이에 박 대통령은 상당 기간 밤마다 광장에 수십개의 철책을 세워 대공 경계를 하도록 했다.
AN-2기는 소련이 1948년 처음 개발한 경량 수송기다. 동체 표피가 가벼운 합금으로 돼 있고, 상하 날개는 특수 천으로 제작돼 저공비행할 경우 레이더를 피할 수 있다. 공산권 국가를 중심으로 약 1만8000대가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북한은 330대 정도 운용 중인 것으로 우리 국방부는 파악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주말 평양 외곽 순안공항에서 진행된 항공육전병부대(우리의 공수부대)의 야간훈련을 참관한 것으로 보도됐다. 훈련에는 중대급 규모의 항공육전병 100여명과 AN-2기 7∼8대가 동원됐다고 한다. AN-2기가 여전히 대남 기습 침투용 핵심 병기임이 확인된 셈이다.
북한은 약 20만명의 특수전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AN-2기 등을 이용해 우리 후방으로 침투해 주요 목표 타격과 요인암살, 민간교란 등 배합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키 리졸브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앞두고 남북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에 AN-2기를 동원한 적의 후방 침투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겠다. 그런 전례가 없다고 해서 안심해선 안 된다. 천안함 공격이나 연평도 포격도 전혀 예상치 못한 도발 아니었나.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