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여성CEO 열전] ④ 법무법인 ‘산지’ 이은경 대표변호사
입력 2014-01-24 02:34
“법의 뿌리는 사랑”… 수익 20% 환원
“법조계의 그릇된 관행과 결별을 선언하고 법무법인 ‘산지(山地)’를 설립했습니다. 세금탈루는 절대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문 닫는다’고 걱정했지만, 문을 닫기는커녕 사업은 더욱 확장되고 있지요.”
이은경(50)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는 22일 “이익의 20%를 사회에 환원하며 페어플레이 하겠다는 정신으로 기독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라 기독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산지라는 이름은 고 하용조 목사님께서 지어 주셨어요.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로 ‘쉽게 안주할 수 없는 땅’ ‘협곡과 준령이 있는 땅’을 의미하지요. 법무법인 산지는 신천지, 개척지, 미답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로펌인 셈입니다.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도전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므로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뜻을 같이하는 의뢰인들과 묵묵히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이 변호사는 살아오면서 하나님께 세 번의 서원 기도를 드렸다. 첫 번째는 예수님을 만난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판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판사가 되면 고아와 과부를 돌보겠다는 서원 기도도 함께 드렸죠.”
이후 고려대 법대에 입학했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했다. 11년간 판사로 재직하면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결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가능하다면 판사로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혼’이라는 변수가 발생했다. 자녀 부양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변호사 개업을 결심했다.
두 번째 서원은 변호사로서 인생 ‘2막’을 열었을 때였다. 2002년 법복을 벗으니 경제적인 힘이 절실했다. 하지만 로펌에 들어가거나 동업하지 않고 단독으로 개업했다. 여성변호사 단독으로 개업한 것은 국내최초라고 했다. 주변에서는 무슨 수로 버티느냐고 만류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록펠러처럼 어마어마한 물질적 풍요를 주세요. 십일조가 아닌 십의 이조를 드리겠습니다.”
기도한 대로 주님은 물질 축복을 듬뿍 주셨다. 개업 첫 해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 사건을 맡았다. 최후 변론에서 이 대표가 인용한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라는 시편 구절이 언론에 보도되며 화제가 됐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었다. 상대 측의 변호를 맡았다는 이유로 멱살을 잡거나 저주를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삶이 피곤해 하나님께 투정도 부렸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두렵지는 않았다. 몸이 지쳐갈 무렵, 뉴욕주립대 로스쿨에서 11개월을 지냈다. 그때 함께 동행했던 어머니가 이 변호사에게 큰 버팀목이 됐다.
세 번째 서원은 주의 종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주님이 새로 맺어주신 남편과 함께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인생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주님, 오늘 제가 하는 일을 함께 하시고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주님, 오늘 하루 무엇을 할까요?’라고 기도하지요. 주님의 음성이 구체적으로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끄신다는 생각으로 사니 상황과 무관하게 행복하고 더욱 평안하답니다.”
그의 지론은 “법의 뿌리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산지는 기독교 정신으로 운영된다. 변호사 등 직원을 채용할 때부터 매주 예배를 드린다고 공고한다. 점심 변호사 모임 가운데 말씀을 나누고 전략회의 때는 의뢰인에 대한 중보기도로 시작한다.
“변호사는 특히 ‘역지사지’, 즉 타인을 배려하는 성품과 균형 갖춘 시각을 필요로 하는 직업입니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습니다. 저는 사람은 죽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왔는가가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섬김, 나눔에 바탕을 둔 법무법인 산지의 기독 공동체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사람들은 “법을 곧이곧대로 지켜서는 기업이 생존할 수 없다. 때로는 정의롭지 못한 로비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법무법인 산지는 세상과 차별되는 공동체 실험을 하고 있고 앞으로 실험 결과를 계속 누적해 새로운 성과 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은경 변호사=△1964년 제주도 출생 △숭의여고, 고려대 법대 졸업 △서울지법, 서울지법 남부·동부지원, 전주지법 판사 △2002년 변호사 개업 △뉴욕주립대 로스쿨 연수 △서울변호사회 법제위원장 역임 △현 경찰청 인권보호위원회 위원, 대검찰청 사건평정위원회 위원, KBS 자문변호사, 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서울 온누리교회 안수집사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