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계약땐 DB 제공자에게 뒷돈까지… 본인도 모르게 수시로 사고 팔리는 개인정보들

입력 2014-01-23 01:37

“안녕하십니까, ○○저축은행입니다. 30대 직장인에게 꼭 맞는 대출 우대금리 혜택이 있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랜덤(무작위)으로 건 거다. 어쩔래?(전화 끊음)”

전국을 뒤흔드는 카드사 정보유출 대란은 사실 새삼스런 호들갑에 가깝다. 금융감독의 사각지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권역별 모집인들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영업 목적의 개인정보 유통’이 이뤄지고 있었다. 22일 금융위원회가 금융회사 고객정보 유출 방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대출모집인, 대부중개업자, 보험설계사, 카드모집인 등이 고객정보를 불법유출하거나 불법정보를 이용하더라도 이에 대한 제재가 거의 없었다”고 실토했을 정도다.

◇상담 한 번에 영구 보존=금융권에서는 기본적 개인 식별정보는 물론 직업과 재산 정도, 재테크 필요 여부 등 민감한 정보를 망라한 고객 데이터베이스(DB)가 고객 모르게 거래되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 고객 DB가 곧 자산으로 직결되는 모집인들은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모으고, 이를 유용해 영업에 활용하길 서슴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개인정보보호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금융회사에 개인정보보호 자가진단 매뉴얼을 배포하며 자율규제를 꾀했지만 이러한 관행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다.

가장 폐해가 심각한 곳은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등 고금리 대출이 많은 제2금융권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부업체와 연관된 대출중개업체가 고객의 정보를 함부로 공유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폐업과 창업을 거듭하며 DB를 유지해 단속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대부업체나 저축은행에 한 번만 대출상담을 하면 이후 무수한 스팸문자와 대출권유 전화, 나아가 보이스피싱에 시달리게 되는 이유다.

등록되지 않은 군소 대부업체 등 소형 금융회사일수록 개인정보가 샐 위험이 더 크다. 대출중개업체의 모집인이 대출 심사 작업에 직접 관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집인 경력이 있는 한 대부업체 직원은 “암시장에서 매매되던 개인정보가 시간이 지나 전화번호 등의 가치가 떨어지면, 룸살롱·대리운전업체 등으로 싼값에 흘러나간다”고 말했다.

◇“계약 체결된 DB는 5만원짜리”=일부 보험사의 독립판매법인(GA·General Agency)도 고객 DB 유통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GA에서 고객의 DB가 후불로 거래된다는 것은 해당 업계의 불편한 진실이다. 고객이 어떠한 자산관리를 원하는지, 어떤 재무 상태인지 등이 자세히 서술된 고객의 DB는 자체적으로 ‘급수’가 매겨져 유통된다. 한 보험설계사는 “넘겨받은 DB의 고객이 고액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DB 제공자에게 3만∼5만원이 지급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업에 눈이 먼 일부 보험설계사들은 더 많은 DB를 모으기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는다. 한 보험설계사는 “유명 인터넷 카페의 카페 개설자에게 돈을 건네며 ‘단기간 몰래 운영자로 꽂아 달라’고 부탁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운영자 자격을 얻어 카페 가입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모두 확인한 뒤 연령과 연락처, 이메일 주소 등을 챙겨 유유히 떠난다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DB 확보량은 곧 몸값이다. DB를 많이 확보한 보험설계사들은 대형사로 ‘스카우트’돼 높은 보수를 받기도 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