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부패’ 외치던 시진핑, 도덕성 먹칠… 中 최고위층 일가, 4270조원 해외 유출·탈세 의혹
입력 2014-01-23 02:33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등 중국 전현직 고위 지도층의 자녀 및 친인척들이 역외 조세피난처에 수백개의 페이퍼컴퍼니(paper company)를 설립해 운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부터 최소 1조 달러(약 1068조원)에서 최대 4조 달러(약 4270조원)가 자국의 감시망을 피해 해외로 유출돼 대규모 탈세 의혹이 일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22일 자체 홈페이지에서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등 세계 각국의 50여개 언론과 공동 취재한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페이퍼컴퍼니란 물리적 실체 없이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회사로 주로 조세피난처에 설립돼 조세 회피나 불법자금 조성 등에 악용된다.
◇중국 지도부 정치·도덕적 타격받을 듯=중국인 소유의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명단에는 시 주석의 매형인 덩자구이가 포함돼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 2008년 3월 ‘엑셀런스 에포트 프로퍼티 디벨롭먼트(Excellence Effort Property Development)’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설립 시점이 처남인 시 주석이 중국 최고 권력기구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있던 때다. 부동산 재력가로 알려진 덩자구이 등 시 주석 일가의 재산은 4억 달러(약 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덩자구이가 이 회사를 통해 6년 가까이 유출한 자금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페이퍼컴퍼니 설립 자체만으로도 시 주석이 단단히 체면을 구기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연일 부패척결을 주창했으나 정작 등잔 밑은 어두웠기 때문이다.
‘서민총리’로 존경받아 온 원 전 총리의 아들과 사위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은 아버지가 총리로 재임하던 2006년 BVI에 ‘트렌드 골드 컨설턴츠(Trend Gold Consultants)’를, 원 전 총리의 사위인 류춘향은 2004년 ‘풀마크 컨설턴츠(Fullmark Consultants)’를 세웠다. 현재 류춘향은 중국 은행감독위원회 고위 간부로 재직 중이고, 원윈쑹은 2012년 중국 최대 위성기업인 차이나새콤 회장으로 취임했다.
덩샤오핑(鄧小平),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사위와 조카, 리펑 전 총리의 딸 등 내로라하는 핵심 권력층의 친인척들도 대거 포함됐다. 그렇지 않아도 대를 이어 권력과 부를 누리고 있다는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탈세 의혹까지 더해져 중국사회에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정계 외에 최고 여성 갑부인 양후이옌 등 중국 갑부 16명도 적게는 1개, 많게는 7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페이퍼컴퍼니 최다=페이퍼컴퍼니에 등재된 중국·홍콩인 등기이사 등은 2만1321명에 달했다. 미국의 다섯 배 이상이다. 중국 경기가 고점이던 2007∼2008년 정재계 일가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페이퍼컴퍼니를 대거 설립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중국은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가 최근에야 도입돼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이처럼 몰래 부를 불려간 결과 중국 내 소득 양극화는 현재 최악이다. 소득 상위 5%와 하위 5%의 격차는 34배나 벌어졌다. 가디언은 “중국 100대 부호의 자산 총액은 3000억 달러(약 320조원)에 달하지만 3억 명의 서민은 하루 2달러도 채 안 되는 벌이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ICIJ의 폭로와 관련해 “구체적인 상황은 모른다”면서 “폭로 배후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대다수 중국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