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기조연설 직전 불쑥 나타난 아베… 만남은 불발

입력 2014-01-23 03:31 수정 2014-01-23 16:29
박근혜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 전체 세션의 기조연설을 하는 장소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나타나 연설을 경청했다. 그러나 두 정상 간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 아베의 등장=박 대통령의 연설 예정 시간은 오전 11시50분이었다. 같은 세션에서 오후 연설이 잡혀 있던 아베 총리는 당초 오전 세션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 연설이 예정돼 있던 ‘기업가 정신, 교육, 고용을 통한 세계의 재구성’ 세션이 시작되기 5분여 전에 입장해 행사장 맨 앞줄 각국 정상 지정 좌석에 앉았다. 세션 시작에 앞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아베 총리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25분가량 진행된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와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한 영어 연설은 물론 박 대통령과 클라우스 슈밥 WEF 회장과의 질의응답까지 경청했다. 청중과 함께 박수를 치기도 했다. 불과 5m 정도 거리를 두고 한·일 정상이 얼굴을 마주한 셈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슈밥 회장과의 질의응답을 마친 뒤 아베 총리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은 채 행사장을 벗어났다. 청와대 측이 박 대통령 연설에 앞서 사전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대통령과 일본 총리는 행사 계획상 만나지 않게 돼 있다”고 설명한 뒤 곧이어 벌어진 일이었다.

아베 총리가 이처럼 갑작스럽게 행사장에 등장한 것은 전용기가 당초 예정보다 일찍 스위스 현지에 착륙했기 때문이다. 취리히 국제공항에 내린 아베 총리는 곧바로 기차편을 이용해 다보스로 향했고, 도착하자마자 전체 세션 행사장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일본 측은 아베 총리의 오전 세션 참석 사실을 우리 측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 연설에 맞춰 행사장에 나타난 것은 다분히 의도적 행동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이어 고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토록 한 조치 등 최근 들어 우리 정부를 향해 과거사와 영토를 둘러싼 도발 행동을 이어오던 아베 총리는 다보스 포럼 행사장에서 우연을 가장해 박 대통령을 조우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사 반성 없이 한·일 정상회담은 없다”는 입장인 박 대통령에게 먼저 다가감으로써 국제 여론에 마치 자신이 양국 간 화해모드 조성에 더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려 했다는 것이다.

◇‘외형 팽창’에서 ‘질적 경제협력’으로=다보스 포럼 참가를 마지막으로 스위스 방문을 마친 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을 통해 경제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교역량 규모를 늘리는 방식의 ‘외형적 팽창주의’에서 ‘질적 경제협력주의’로의 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처럼 그동안의 순방외교에서 우리 경제의 외형과 규모 키우기에 몰두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제도와 협력의 틀’을 끌어내는 데 올인했다. 강소국(强小國) 스위스에 대한 벤치마킹을 통해 우리 경제의 한계점인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을 모색한 셈이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경제외교는 스위스에 와서 새로운 스타일로 진화하게 됐다”며 “외형적·양적 교역 확대에 그치지 않고, 상대국과의 협업 시스템 구축을 통해 우리 경제 자체의 체질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방문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통상협력의 중심이 된 첫 외교무대였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양국 간 체결된 협정 및 양해각서(MOU) 대부분이 주로 우리 중소기업들에 혜택이 돌아가는 성과물이었다.

다보스=청와대 공동취재단,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